[인터뷰]「4·19혁명」 시민대표 설송웅씨

  • 입력 1997년 4월 18일 20시 15분


해마다 4.19를 맞으면 설송웅 서울용산구청장의 몸과 마음은 1960년4월26일 경무대로 李承晩(이승만)당시 대통령을 찾아가 하야를 권고하던 때의 장면으로 돌아간다.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권하니 이대통령 눈에는 이미 눈물이 글썽글썽하더군요』 그는 4.19혁명때 18세의 서울 중동고교 학생회장으로 시민대표 6인중 1명으로 뽑혀 경무대에 들어갔다. 『4.19때 일부 고교생들은 대학생 형들보다 먼저 시위에 나섰고 대학생 형들을 시위에 끌어들이기도 했습니다. 저도 친구들과 청계천 수표교회에서 모임을 가진 뒤 바로 데모에 나섰지요』 학생과 시민의 데모가 절정을 이루던 4월 26일. 어떻게 연결됐는지 알 수 없지만 설씨는 계엄군들의 안내를 받아 비원으로 갔다. 계엄사 본부사령부였다. 『송요찬 당시 계엄사령관이 「내가 자네를 이박사께 안내할테니 국민들의 참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설 씨 는 『매카나기 당시 미국대사와 許政(허정)외무장관을 스쳐 이대통령 앞에 선 제가 하야라는 단어를 꺼내자 이대통령은 먼산을 바라보며 「정말로 물러나야 하는가」라고 되뇌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10분의 짧은 만남과 그 뒤 군중에 면담 결과를 발표하던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는 설청장은 사단법인 4.19회 2대회장을 지냈으며 집과 사무실의 전화번호를 「0419」로 할 만큼 4.19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하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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