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59)

  • 입력 1997년 4월 19일 08시 03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 〈12〉 왕은 곧 대신을 불러들여 딸을 나에게 시집보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대신도 별로 이의가 없었습니다. 나는 비록 타국 사람이기는 했지만 셈에 밝고 현명하며 갖가지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 이 나라에서는 정평이 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신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그중 맏이는 몇 달 전에 어느 상인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고 이제 하나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남아 있는 둘째 딸로 말할 것 같으면 절세의 미인으로서 더없이 착하고 조용하며 순종적인 여자였습니다. 대신은 그러나 자신의 둘째 딸을 나와 결혼시키는 데는 한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가 그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되면 딸을 버리고 나의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건에 대하여 나는 일단 처녀를 한번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이 말에 대하여 왕도 일리가 있다고 거들었습니다. 그러자 대신은 내게 말했습니다. 『좋소. 오늘 저녁 해가 지기 전에 화원으로 나오도록 하시오. 나는 딸을 데리고 화원을 산책하고 있을 테니 그때 당신이 나타나면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내 딸을 볼 수 있게 될 거요』 곁에서 듣고 있던 왕은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 나는 화원으로 갔습니다. 화원에는 갖가지 진기한 꽃들이 만발하여 그윽한 꽃향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에는 온갖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고, 개울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숲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저녁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화원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만치 길을 돌아 딸과 함께 걸어오고 있는 대신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신은 한손에 지팡이를 든 채 좌우의 풍경을 완상하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그의 딸은 꽃이나 과일 따위를 담는 예쁜 바구니를 한쪽 팔에 건 채 아버지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녁 햇살 속을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는 그 처녀의 모습이 얼마나 청순하고 아름다웠던지 나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윽고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만큼 그들 두 부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나는 마음 속으로 나를 이 낯선 섬나라로 인도하신 알라께 감사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갓 스물 난 그 처녀는 세상에 다시 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런 여자라는 것을 나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갓 피어난 백합처럼 깨끗하고 두 눈은 영롱하기가 풀잎에 맺힌 새벽 이슬 같았습니다. 몸매는 날씬하고 걸음걸이는 더없이 기품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나는 서로 마주쳤습니다만 대신은 나를 향하여 가벼운 목례만 하고는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의 딸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냥 목례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때 대신의 딸로 말할 것 같으면 낯선 남자와 마주치는 것이 수줍은지 약간 외면을 한 채 지나갔습니다.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 처녀에게서는 내가 아직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이국의 꽃향기가 났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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