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장난숙/「해피」의 추억

  • 입력 1997년 4월 19일 08시 37분


신문을 펼쳐보다 「한번 주인이면 평생 주인」이라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사람이 아닌 진도개가 모델인 것을 보고 불현듯 옛 추억이 떠올랐다. 남편은 ROTC장교로 최전방에 배치됐다. 민가가 별로 없는 그곳은 하숙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우리는 월세방을 얻어 신혼 살림을 차렸다. 집에 자주 오지 못하게 되자 남편은 강아지 한마리를 사서 부대에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강아지에게 해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몇달 뒤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해피를 데리고 나왔다. 품에 안고 간 강아지가 송아지만큼 커다란 개가 돼 돌아왔다. 그때부터 해피는 한식구가 되었다. 곧이어 아기를 낳았고 해피의 이름처럼 우리는 행복했다. 남편은 밤중에 귀대하는 날이 많았고 훈련을 떠나면 며칠씩 걸리곤 했다. 그럴 때면 해피는 우리의 가장이었다. 문 앞에 떡 버티고 서서 오가는 사람 참견하며 짖어대고 밤이면 얼씬도 말라는 듯 더욱 사납게 짖으며 집을 지켰다. 당시 우리는 경제적으로 정말 힘든 생활을 했다. 남편이 훈련을 떠나고 나면 쌀이 없어서 라면이나 빵 한조각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도 해피와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곤 했다.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고 군복무가 거의 끝나갈 무렵 보너스제도가 시행돼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자연히 해피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제대가 한달쯤 남았을 때 부대에서 사병이 나왔다. 회식이 있다며 해피를 보내라는 것이다. 상관의 명령이라 꼼짝 못하고 해피를 보냈다. 쇠줄에 묶여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해피를 보며 어찌나 울었는지.아침상을 차렸지만 목이 메어먹을 수가 없었다. 몇시간이 지났다. 이상한 기척에 나가보니 해피가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떨며 서 있는게 아닌가. 부대에 도착해서야 죽게 될 것을 알았는지 줄을 끊고 도망쳐 나온 것 같았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해피가 좋아하는 고깃국에 밥을 말아 배불리 먹였다. 주인을 찾아 그 먼길을 산을 넘고 개울에 빠지면서 집으로 찾아온 해피. 보내지 말아 달라는 듯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던 해피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생각하면 그때 죄를 지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짐승도 죽도록 주인을 섬기려고 하는데…. 아무리 인심이 메마르고 사회가 어지럽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 끌어주고 밀어주고 잡아주는 따뜻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장난숙(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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