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이용섭/작은 질서 어기는 시민

  • 입력 1997년 4월 19일 08시 37분


업무출장으로 20년만에 고국을 방문했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1주일간의 출장기간 내내 한보청문회가 계속됐다. 모두들 모였다 하면 부정부패 의혹을 받는 정치인 경제인들을 벼랑으로 몰아세우며 칼질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절대 선한 체 행동했다. 그러나 모두에게 묻고 싶다. 진정 민족의 정신적 발전에 얼마나 노력했는가 하고. 업무차 미국 연구원들과 함께 한국 최대기업의 한 사무실에 들렀다. 회의 도중 미국 친구들이 담배연기로 호흡이 불편하다고 푸념했다. 2백50평 남짓한 사무실 벽에는 군데군데 금연표지가 붙어있었다. 회사방침도 「사무실내 금연」이라 했다. 그런데도 소위 엘리트 사원들이 사무실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워댔다. 놀라운 일은 또 있었다. 분명 빨간 신호등인데도 서울 거리의 시내버스들은 슬금슬금 진행하더니 횡단보도를 건너버리는게 아닌가. 운전대 앞에 걸린 금연표지와 기사의 손에 들려 있는 담배도 묘한 대조를 이뤘다.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명확하게 지적해주는 사례다. 작은 규율은 어겨도 대수롭지 않고 정부와 관련된 부정부패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된다는게 말이 되는가. 작든 크든 규율을 어긴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작은 규율을 어기는게 습관화한 사람이, 또 그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과연 큰 일을 제대로 할 것인지 자문해볼 일이다. 이용섭(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군도 웨스팅하우스사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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