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성교육현장/어린이안전]『위험 겪어봐야 알아요』

  • 입력 1997년 4월 21일 08시 06분


주부 崔善美(최선미·34)씨는 네살난 둘째 아들이 텔레비전 옆에서 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 그러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저 녀석도 한번 혼이 나야 하는데…』

2년전 미국 뉴욕에서 살 때였다.유치원에 다니는 큰 딸 惠英(혜영·7)이가 집에 돌아와서 『앞으로 전기 플러그에 절대 손대지 않을래』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혜영이의 같은 반 친구 헤더는 장난꾸러기였다. 틈만 나면 텔레비전 비디오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 코드를 뽑아놓아 집은 물론 유치원에서도 혼나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정신없이 플러그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는데 선생님이 헤더의 손을 잡고 모형 소방시설이 있는 구석으로 갔다.

헤더는 거기에서 3,4개의 플러그를 보고 더욱 신이 났다. 그리곤 덥석 하나를 잡아 콘센트에 꼽았다. 헤더의 몸에 짜릿한 충격이 왔다.

선생님이 『다시 한번 해보라』고 말했다. 헤더는 조심조심 손을 대려다 겁이 나는지 포기하고 말았다. 불과 2,3초였지만 충격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헤더는 그후 다시는 플러그를 갖고 놀지 않았다.

최씨는 불이 얼마나 뜨거운지 가르치기 위해 라이터나 가스레인지를 켜고 어린 아이의 손을 대 보게 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처음엔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엔 수긍이 갔다.

어린이에겐 논리나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안전이 어떻고 화재가 어떻고 해봐야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게 역시 최고다.

뉴욕 YWCA유치원도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배우는 안전교육을 한다. 매월 첫째주 화요일엔 소방훈련이 있다. 수업 중 갑자기 비상벨을 울려 교사와 함께 대피하는 연습을 한다.

벨소리에 놀라 우는 아이도 있지만 한두번 반복하면 탈없이 적응한다.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극도 해본다. 불이 나서 사람들이 대피하고 소방차 소방관이 출동하는 상황을 가정, 역할분담을 시키는 것이다.

일본 고베(神戶)에 살면서 두 자녀를 시립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가쓰코(여)는 학기초가 되면 손놀림이 급해진다. 준비할 물건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방재두건(防災頭巾)을 만드는 게 가장 신경 쓰인다.

「110×60㎝ 또는 90×100㎝의 천을 자르고 턱끈을 만든 뒤 본체에 붙이세요…」. 유치원에서 보내온 안내문은 친절한 그림과 함께 ㎜단위까지 표시돼 있다.

방재두건은 지진발생시 어린이들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도록 했다. 급할 땐 책상이나 탁자밑으로 들어가도록 지도하지만 두건은 조금 여유있는 상황에서 밖으로 대피하며 사용하려는 것이다.

지진대비 훈련은 수업중 예고없이 실시한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방재두건을 쓰고 교실을 빠져나와 운동장에 모이는 연습을 어린이들은 오히려 재미있어 한다.

방재두건을 수업중에는 방석으로 사용한다. 고베의 68개 시립유치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대피훈련 요령도 비슷비슷하다. 교육위원회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고베시와 교육위원회의 지진대비 교육은 지난 94년 1월17일 사상 유례없는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강화됐다. 진도7의 강진으로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만 1백79명이 숨지고 8백96명이 다쳤던 것.

고베시립유치원장인 미나미 유우코(南佑子)는 『효고현 지방은 그동안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컸다』며 『앞으로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어린이들을 세심히 지도한다』고 말했다.

〈뉴욕·고베〓송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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