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광장/귀순자 체험기]남한사회 「소모임 천국」

  • 입력 1997년 4월 21일 08시 06분


3년전 남한에 처음 왔을때 놀랐던 일이 있었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5,6명씩 모여 한달에 20만원씩 돈을 붓는 소위 「계모임」이라는 것을 본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어 당황했지만 「계모임」의 취지가 평소 조금씩 갹출해서 필요할 때 「목돈」을 타는 것이라는 점을 뒤늦게 알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남한 생활을 하다보니 이런 계모임은 어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곧 느낄 수 있었다. 대학생들은 물론 심지어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3명이상만 모이면 「계」를 만드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었다. 물론 학생들의 경우에는 어른들과 달리 「푼돈」을 모아 한달에 한번씩 영화를 보러 가는 등 친목모임의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남한은 이같은 계모임뿐만 아니라 각종 동창회 종친회 향우회 등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힌 각종 「소모임」활동이 활발하다. 이런 모임에 한두군데 끼지 못하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북한에서는 비공식적으로 3명이상 모이는 별도의 모임은 감시의 대상이 된다. 일반 학교에서는 국가가 지정해준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 공식적인 모임이외에 3명이상 별도로 모임을 만들 경우 「반정부적」 음모를 꾸밀 소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불신풍조때문인지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서로 격의없이 어울리는 술자리도 쉽지 않다. 90년대초 金正日(김정일)은 일반 주민들에게 『잠옷바람으로 집에서 혼자 먹을 것』이라는 술문화지침을 내린 적이 있다. 서너명 이상 모여 술을 먹을 경우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불평불만이 사회 불안요소가 될 것이라는 우려때문이다. 이즈음 심지어 결혼식장에 일가 친척이외에 하객들이 몰려오는 것도 제약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규율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당생활 총화시간에 철저한 자기비판을 받는 곤욕을 치르기 때문에 더더욱 몸을 사려야하는 실정이다. 〈여금주〉 ◇필자약력 △23세 △함흥 회상구역 햇빛고등중학교졸업 △회상유치원 교양원 △가족과 함께 94년3월 귀순 △중앙대 유아교육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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