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선후배로 한솥밥을 먹던 다정한 동료. 그러나 이젠 서로에게 창을 겨눠야 한다.
97프로농구 결승에서 만난 부산 기아엔터프라이즈의 최인선감독(47)과 원주 나래블루버드의 최명룡감독(46). 이들은 80년대 초반까지 함께 산업은행을 이끌던 선후배다.
중앙대를 졸업, 지난 74년 입단한 최인선감독과 한양대를 졸업, 이듬해 산업은행 유니폼을 입은 최명룡감독. 이들은 각각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로 서로의 뜨거운 숨결을 읽으며 산업은행과 영욕을 같이했다.
이들이 입단했을 때만 해도 산업은행은 박한 김인진 이광준 등이 포진한 국내 정상의 전력. 그러나 70년대 말 현대와 삼성이 창단하면서 산업은행은 다른 금융팀과 함께 내리막길을 걸었다.
서울 다동 골목의 스탠드바. 이들은 경기에 진 날마다 이곳에서 마주 앉아 금융단 농구의 쇠락에 울분을 토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들의 사이가 각별했던 또하나의 이유는 테니스 때문. 먼저 라켓을 잡았던 최인선감독이 최명룡감독에게 권유, 틈날 때마다 코트에서 함께 땀을 흘리던 사이다.
최인선감독이 현역을 떠난 이듬해인 84년 최명룡감독도 은퇴했다. 최인선감독은 85년 기아자동차 코치, 92년 감독에 취임하며 기아자동차 전성기를 이끌었다. 반면 최명룡감독은 산업은행 코치와 감독으로 코트에 나설 때마다 여전히 들러리의 울분을 삭여야 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최명룡감독은 창단 첫해부터 당당히 결승마당에 올랐다. 상대는 바로 최인선감독. 이들이 결승에서 만난 것은 지도자로 나선 이래 이번이 처음.
『친한 후배와 만나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다. 승부를 떠나 좋은 경기를 펼쳐 보이겠다』(최인선감독)
『한수 배운다는 생각으로 싸우겠다. 시즌전 최약체로 꼽히던 우리팀은 결승진출만으로도 이미 목표를 초과달성한 셈이다』(최명룡감독)
양감독은 나란히 페어플레이를 다짐했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다르다.먹지않으면먹혀야한다.
우승고지가 빤히 보이는 외나무다리. 그 한가운데에서 만난 이들은 지금 비정한 「정글의 법칙」을 절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화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