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공천개입의혹
박씨는 현철씨의 신한국당 공천개입 의혹에 대해 『들은 바 있다』며 친형인 朴慶宰(박경재)변호사와신한국당韓利憲(한이헌)의원의경우를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박씨는 『우리 형도 있을 테고…. 한이헌씨의 경우도 (현철씨가) 조정해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4.11총선 때 서울강동갑에서 민주당 李富榮(이부영)의원과 맞붙은 신한국당의 李春植(이춘식)후보가 서울지역 여당후보 중 유일하게 3등을 한 것은 김현철씨가 이의원을 돕기위해 「정책공천」을 했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김현철씨의 정치야망
박씨는 김현철씨의 정치야망에 대해 『어릴 때부터 그런 것만 보고 자랐는데 (정치적 야망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현철씨가 아버지를 도우려는 순수한 뜻을 가진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여러번 (총선)출마를 시도했으나 대통령께서 지금 출마하면 아버지 후광으로 되는 것이니 좀더 기다렸다가 임기를 마치고 나가라고 말린 것으로 알고 있다. 현철씨가 국정에 개입한 것은 의원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박씨는 또 『현철씨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다 못하고 부산시장에 출마하려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는데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출마하려다 무슨 사정인지…. 지방의회 선거의 참패 때문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 어쨌든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며…. (부산)시장 출마의 뜻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박씨는 특히 『김현철씨가 30,40대 젊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이번 대선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해 김현철씨가 15년 후 자신의 「집권계획」을 위해 준비해왔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박씨는 현철씨가 대권에 욕심을 가진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김현철이라고 해서 대권도전을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2대에 걸쳐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김현철씨는 똑똑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현철씨가 서울시장 출마얘기도 했다』면서 『김현철씨가 대권에 도전한다는 의사를 피력하지는 않았지만 대권도전은 정치인의 꿈이 아니냐』고 말했다.
▼메디슨 사건전말
박씨는 첨단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메디슨사(社)사건에 대해 『95년 메디슨사의 이민화사장으로부터 의료기기를 구입하고 병원 인테리어까지 맡겼는데 모두 엉터리였다』면서 이사장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박씨는 또 메디슨사는 초음파와 자기공명장치(MRI)설비를 주생산품으로 하고 있는데 상공부는 이 분야의 외제수입은 금지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메디슨사가 대통령 주치의 고창순씨와 김현철씨가 측면지원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고창순씨는 담당검사에게 전화를 해서 (이민화사장은) 「꼭 돌봐줘야 할 사람이다」라며 압력을 넣은 사람이다. 현철씨는 자신이 「고박사를 통해 (검사에게) 전화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그러나 의원들이 재차 『고씨가 검찰에 전화한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이냐』고 묻자 『고창순씨가 「불편부당하게 처리해 달라」고 전화했다』고 앞서의 발언을 수정했다.
▼대선자금
박씨는 92년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말할 입장이 아니라면서도 부분적으로 당시 민자당의 대선자금 지출실태를 증언했다.
박씨는 『대선 당시 한번 유세할 때마다 3억∼5억원씩 든다고 말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큰 의미를 두지 마라』면서도 말한 사실에 대해서는 『있다』고 시인했다. 박씨는 특히 김현철씨의 사조직 운영에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눈 먼 돈이 많이 있을 수 있다』고 대답,대선 당시 김현철씨의 사조직이 자체적으로 대선자금을 조성해 사용했음을 시사했다.
박씨는 그러나 의원들이 『한달에 3천억원 정도가 들며 선거 때 조단위의 돈이 들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조 단위를 말한 것에 대해 신빙성을 두지 마라. 선거비용을 알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면서도 『김현철씨의 사조직 운영에도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회의 의원들이 대선 직후 김영삼후보측이 선관위에 신고한 법정 선거비용액이 실제 대선비용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영삼후보나 김대중후보나) 피차 간에 많이 쓰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