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람이 미친다. 중얼중얼 헛소리를 내뱉다가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던지고 부순다. 가엾은 영혼, 어떻게 감싸야 하나.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광기(狂氣)는 공동체의 골칫거리였다.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의 영역. 주술 최면 가학 위로의 기법이 동원됐지만 속시원한 치유책은 나오지 않았다. 광기에 얽힌 의학 패러다임의 변천을 당시 시대환경과 연관지어 설명했다. 신경정신과 개업의인 저자는 정신병 치료법의 발달과정을 더듬어가면서 개인차원의 고통인 정신병이 어떻게 「정치」의 영향을 받는지도 짚었다.
정신의학의 원조는 고대 마술사. 구멍이 뚫린 채 발견된 두개골이 끔찍한 증거다. 환자가 발견되면 마술사는 뇌속에 악령이 들어간 탓으로 단정했다. 『몹쓸 기운을 쫓아내야 한다』며 산사람 머리에 꼬챙이를 들이밀었다. 중세의 마녀재판은 한술 더 뜬다.
마녀재판의 본질은 체제 도전세력에 대한 길들이기. 폭정에 허덕이던 서민이 반란을 꿈꾸자 지배계층은 대중의 폭력성을 발산시키기에 적합한 희생양을 찾아 나선다. 마녀재판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단골 처형대상이 된 것은 불쌍한 정신질환자들이었다.
이 전통은 20세기 독일 나치즘과 구소련 독재체제로 이어진다. 저항인사중 상당수가 「정신병자」로 몰렸다.
이런 점에서 통치자의 계략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는 인간심성의 변덕과 나약함에 대한 기록으로도 읽혀진다. 세기말 우리 시대의 정신건강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된다.
김영진 지음(민음사·9,000원)
〈박원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