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보청문회와 「스타」박경식

  • 입력 1997년 4월 22일 20시 08분


▼『정치인들하고 만나서 얘기해 보면 외계인하고 얘기하듯 생각하는 게 달랐다』 그저께 한보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G남성클리닉 원장 朴慶植(박경식)씨의 말은 TV시청자들로 하여금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게 했다.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세상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그런 정치인들 때문에 정치가 이 모양이라는 냉소의 뜻이 들어있다 ▼사실 요즈음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코미디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보로부터 한푼의 돈도 안 받았다고 딱 잡아떼던 정치인이 검찰 조사 후에는 『밤중이라 누가 준 것인지도 모르고 받았다』는 식으로 말이 바뀐다. 국회 한보특위 위원들이 청문회에서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봐줄 사람, 안 봐줄 사람」을 여야가 서로 가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국민들은 분개하다 못해 실소(失笑)하며 등을 돌린다 ▼박씨는 기왕에 「코미디 프로」에 나왔으니 나도 코미디나 하고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청문회에 나온 듯했다. 위원들의 질문에 좌충우돌 맞받아치는 화법, 싱글 싱글 웃으며 질문하는 위원들을 내려다 보는 태도, 스스로 「국민의 대표」라며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큰소리 치는 오만함… 이날 박씨의 「연기」는 청문회의 「인기」를 모처럼 한껏 높였다. 무슨 스타탄생이라도 보는 것처럼 정치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안긴 듯했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나 생각하면 정치인들도, 박씨도, 청문회도 이래서는 안된다. 한보청문회가 어떤 청문회인가. 온갖 얼룩과 때로 뒤덮인 우리 정치판을 깨끗이 청소하고 다음 세기를 위한 새로운 판을 만들자는 자리다. 그 청문회에 나와 서로가 서로를 희화화하며 시간을 허비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지금 우리는 숨막히는 「한보터널」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정치코미디나 즐기며 소일할 처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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