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부도사태는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이 금융계 약점을 활용, 은행장의 숨통을 죄면서 마음껏 은행돈을 끌어 써 일어난 금융사고다』(李錫采·이석채 전청와대경제수석)
이번 한보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보그룹 및 금융관계자, 전청와대경제수석 등이 털어놓은 증언에는 국내 금융계의 전근대적인 대출관행 등 고질적인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은행장전횡이 심하다〓朴一榮(박일영)전제일은행여신총괄부장은 청문회에서 『은행장의 지시로 한보대출이 이뤄졌으며 거액대출인 경우 은행장의 의견이 절대적』이라고 증언했다. 朴錫台(박석태)전제일은행상무는 『은행장에게 여신집행 권한이 편중돼 있는 관행이 문제』라고 증언했다. 이들의 지적대로 은행장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자」와 같으며 청탁에 의한 대출건에 대해서는 실무자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돼왔다는 게 금융계의 중론.
은행관계자들은 『은행장의 기분을 거스르면 임원승진이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실토했다.
▼대출심사가 부실하다〓李喆洙(이철수)전제일은행장은 한보철강에 대한 심사의견이 E등급으로 낙제점이었는데도 △담당 상무가 그런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으며 △한보의 재무구조가 좋지않지만 재력이 있는 것같아 대출결정을 내렸다고 진술했다. 禹찬목 전조흥은행장은 『96년4월 한보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한보를 재무구조악화대상기업으로 지정했으나 정보교환이 안돼 우리는 몰랐고 담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대출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와 관련, J은행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대형시설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따질 평가기구가 없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면서 대출적격여부를 판정할 공동 신용평가기관을 설립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은행별로 여신심사위원회에 힘을 실어 은행장 독단의 대출집행 등을 막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지적.
▼외압에 약하다〓박석태전상무는 『청와대 재경원 등이 관심을 가져 수시로 대출내용을 보고했으며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였다』고 진술했다. 金時衡(김시형)산업은행총재는 韓利憲(한이헌)당시 경제수석이 「洪仁吉(홍인길)당시 총무수석의 부탁」이라며 걸었던 협조전화가 「청탁성」이었다는 걸 인정했다.
申光湜(신광식)전제일은행장은 청와대에 찾아가서 『담보를 잡고 한보에 대출하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좋다』는 대답을 듣고와 대출하는 등 「권부(權府)에 기대기」사례도 있었다.
이런 속사정을 잘 아는 한보그룹측은 청와대관계자 등 고위실력자를 등에 업고 부도 일보직전에도 은행돈을 마구 빌려쓸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특수은행의 한 임원은 『경제수석 등 고위관계자의 청탁전화를 받고 거절할 정도로 배짱있는 은행장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금융기관이 외압에 과감히 맞서기 위해서는 「주인있는 은행」이 나와야하고 은행장도 성적에 따라 공과를 인정받는 풍토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강운·천광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