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양말 좀 줘』 최근 들어 출근하는 남편의 특별주문이다. 3년 전부터 양복에 흰색 양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어두운 색 계통의 양말만 신던 남편이 유별나게 요즘은 검은 양말만 요구했다. 검은색 양말은 세켤레밖에 없어 미처 빨아 말리지 못해 감색과 회색을 권하면 마지못해 신고 나간다.
그럴 땐 언제나 『내일은 검은색 양말을 신고 가게 빨아 놔』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남편이 유독 검은색 양말만 찾는 이유는 뭘까. 몇번을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그냥』이라며 남편은 뚜렷한 이유를 말하지 않은 채 문을 열고 나서곤 했다.
여느 때와 같이 남편은 어김없이 검은색 양말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양말장을 뒤져보니 검은색은 물론 어두운 색의 양말이 한켤레도 눈에 띄지 않았다. 빨래를 미루는 바람에 남은 것은 남편이 운동화를 신을 때 즐겨 신는 흰색 양말뿐이었다.
『여보, 미안해요. 미처 빨아놓은 것이 없어서』 나는 흰색 양말을 내밀며 양해를 구했다. 남편은 할 수 없다는 듯 마지못해 흰색 양말을 신었다.
그런데 남편은 구두를 신으면서 몹시 신경을 쓰는 기색이었다. 나는 자연히 남편의 구두로 시선이 갔다.
남편의 구두는 지퍼가 달린 검은색 부츠형이다. 그런데 한쪽 구두의 지퍼가 달린 앞 등으로 양말의 흰색이 뚜렷이 비치는 게 아닌가. 나는 그제서야 남편이 검은색 양말만을 신으려 한 이유를 깨달았다.
『구두를 새로 사든지 지퍼를 고치든지 하지 왜 그 고생이냐』고 했더니 『경기 불황으로 회사 분위기도 안좋아. 검은색 양말만 신으면 앞으로 1년은 거뜬히 신을텐데 뭐하러 새걸사.지퍼를고치는데도 5천원을 달래』하는 게 아닌가.
언제나 경제가 회복돼 남편이 검은색 양말을 찾지 않게 될까. 그날 당장 시장에 나가 검은색 양말 두켤레를 사왔다. 그 뒤로 매일 검은색 양말을 내주는 나와 그것을 받아 신는 남편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곤한다.
최경란(인천 남구 주안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