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송진선/치매 할머니 「로마의 실종」

  • 입력 1997년 4월 24일 08시 51분


<<여행은 흔히 인생에 비유 된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해도 파란만장한 우리네 인생처럼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 중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수와 보람, 그리고 기쁨과 슬픔. 「여행스케치」는 이런 여행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그 곁에서 지켜 보고 함께 겪는 전문TC(TourConductor) 송진선씨(24·NTA소속)를 통해 보는 「여행의 창」이다.>> TC(투어콘덕터)들에게 5월은 「잔인한 계절」이다. 「효도관광」을 떠나는 연로하신 여행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늘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자세를 추스른다. 지난해 5월, 일흔을 넘기신 할머니 할아버지 스물여섯 분을 모시고 유럽여행을 떠날 때였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오기는 했지만 두 분이 치매환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기운이 쭉 빠졌다. 어쨌든 비행기는 이륙했고 일정은 잡혀 있었다. 그러다 로마의 성베드로성당에서 일이 터졌다. 할머니 한분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세어도 빈 숫자는 채워지지 않았고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로마의 후텁지근한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가슴 속이 서늘해졌다. 설상가상으로 현지 가이더로 나온 유학생은 이탈리아어가 서툴러 나를 답답하게 했다. 결국 경찰관에게 도움을 청했다. 40분후, 경찰의 도움으로 할머니를 찾았다. 근처 박물관에 들른 중국관광단 틈에 끼어 다니셨던 모양이었다. 그 순간 반가움과 허탈감, 죄송함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놀라셨죠』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데…』 수십년만의 모녀상봉처럼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열흘간의 투어를 끝내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파김치가 된 피곤한 몸으로 작별인사를 마치고 대합실을 나서려는데 그 할머니가 화장실 쪽에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이거 손자 주려고 했던 건데 고생한 색시에게 주는 거야』 빳빳한 천원짜리 지폐 두장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면서 피로는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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