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김세원/춤판 어디 없소

  • 입력 1997년 4월 24일 08시 51분


신문사 편집국안에서 문화부로 자리를 옮겨 무용을 담당하게 됐다고 하니 주변에서 『무용기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겠다』며 반가워들 한다. 무용에 조예가 깊어서가 아니다. 남다른게 있다면 친구들과 어울려 춤추기를 좋아한다는 것. 「보는 춤」에서 「즐기는 춤」으로 기사를 개발하라는 주문인 듯하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의 춤에 대한 열정은 아무도 못말린다. 여의도나 대학로 신촌 홍익대일대의 록카페, 대학캠퍼스….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자연스런 춤판이 벌어진다. 심지어 댄스곡을 틀어놓은 카세트테이프노점상 주변에서도 즉석 무대가 만들어질 정도다. 자신을드러내고싶어하는 비디오세대에게 춤은 또래끼리공감대를 만들어가고연대를 확인하는 의사표현수단이다. 그러나 이런 「즐기는 춤」열기는 「보는 춤」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몇몇 현대무용공연이나 외국의 이름난 발레단초청 같은 예외적인 경우말고는 대부분의 무용공연은 「가족잔치」로 끝난다. 하긴 요즘 객석이 비는 현상은 무용공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고 희한한 일들이 매일매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금쪽같은 시간과 제 돈 써가며 공연장을 찾을 이유가 없다. 정태수리스트 박경식리스트에 이어 황장엽리스트를 감상하거나 추적하기도 바쁘다. 어떤 사회학자는 젊은이들의 춤열기를 『춤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몇 안되는 공격성의 출구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래서 말인데 정작 춤이 필요한 것은 일일연속극처럼 매일 TV로 중계되는 한보청문회를 보면서 열받고 삶에 지친 기성세대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웬만한 나이트클럽이나 디스코텍에선 「물흐려놓는다고」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다. 체면을 생각해서 아무데서나 흔들 수도 없고. 그래서 아쉬운대로 관광버스안이나 음침한 카바레라도 찾는 모양이다. 정치에 대해, 사회에 대해 터지는 분통도 식힐겸 「명퇴」바람이다 불황이다 해서 움츠러드는 몸을 쭉쭉 뻗어가며 신바람나게 춤 한 번 춰 볼 춤판이 어디 없을까. 아저씨 아줌마들 기를 살려주는 그런 춤판을 기획한다면 만원사례가 보장될텐데…. 김세원<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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