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관 신바람 건강법⑥]잘못알려진 만병통치약-엔도르핀

  • 입력 1997년 4월 24일 08시 51분


지하철 안에서 두 노인이 대화를 나눕니다. 『수투레스 그거 참으면 안된디야』 『옳거니. 우째꺼나 웃고 살아야 엔도루핀이 나와서 건강하게 오래 산다카더라』 ▼ "웃어야 나온다"는 잘못 ▼ 노인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엔도르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건강」하면 곧바로 「엔도르핀」을 떠올리는 게 우리나라에선 상식처럼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엔도르핀은 기분이 좋을 때, 신나게 웃고 떠들 때 펑펑 분비되고 이것이 많이 분비돼야 건강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엔도르핀만큼 잘못 알려진 건강상식도 드뭅니다. 국내외 어느 논문에도 「기분 좋을 때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기분 나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는 보고가 없습니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화를 내거나 기분이 나쁠 때 이 두가지 호르몬은 동시에 분비됩니다. 그런데도 엉터리 지식이 널리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두 TV 등의 매체에서 엉터리 건강강의를 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엔도르핀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엔도르핀은 우리 뇌속의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이름입니다. 우리 몸이 상처를 입어 통증을 느낄 때나 기분 나쁠 때, 불안 공포 초조감을 느낄 때 이를 방어하고 진정시키려고 분비되는 것이 엔도르핀입니다. 쉽게 말해 엔도르핀은 몸안에서 분비되는 「마약」입니다. 실제 엔도르핀은 모르핀보다 진정효과가 세배나 높습니다. ▼ 진정효과 모르핀 3배 ▼ 기분이 아주 좋거나 즐거울 때는 당연히 엔도르핀 분비가 억제됩니다. 심신이 행복한 사람은 마약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분만중인 산모는 엔도르핀이 최고치에 도달했다가 출산 후 서서히 감소해 며칠 후 평상 수준으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운동할 때는 어떻게 될까요. 운동을 하면 엔도르핀이 증가하는데 가벼운 운동으로 산소가 충분할 때는 별로 증가하지 않다가 자기 능력의 80%가 넘는 강한 운동으로 산소가 부족해지면 엔도르핀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이 때 엔도르핀이 많아지는 것은 인체가 과도한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복싱선수가 시합중에 그렇게 두들겨 맞아도 아픈 줄 모르는 것은 엔도르핀의 강력한 진통작용 덕분입니다. ▼ 지나치면 되레 해로워 ▼ 엔도르핀은 사람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많이 분비됩니다따라서 엔도르핀은 「건강약」이 아니라 「비상약」인 것입니다. 엔도르핀이 기분 좋을 때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고 무조건 그걸 줄이거나 없애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살다 보면 열쇠를 잊어버려 비상키가 필요한 때가 있고, 타이어가 펑크나서 예비타이어가 필요한 때가 있는 것처럼 엔도르핀도 우리 몸이 비상사태에 빠졌을 때 외부로부터 인체를 지켜주는 귀중한 방어장치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속담이 엔도르핀에도 적용됩니다. 엔도르핀이 많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식욕이 떨어져 몸이 마르고 신경쇠약이나 면역저하로 인한 감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신기한 외래어 좋아하는 사람들, 「곡조」도 모르면서 너무 유식한 척하지 맙시다. 황수관〈연세대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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