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도박중독증

  • 입력 1997년 4월 24일 20시 27분


▼『예정된 시간을 넘겨 도박을 한 적이 있다』 『도박을 하기 위해 남의 돈을 빌린 적이 있다』 『도박 때문에 할 일을 못했거나 소홀히 한 적이 있다』 정신과의사들이 흔히 도박중독증 여부를 가려낼 때 제시하는 설문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주변에 그다지 많지 않을 듯싶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도박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재미삼아 혹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화투를 치거나 약간의 돈내기를 하는 것은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닐 것이다.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각종 스트레스나 긴장감을 줄일 수 있는 놀이문화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여가시간이 크게 늘어난데 비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방편은 아주 제한돼 있다. 일부 계층의 과소비성 향락성 레저활동에 비하면 일반인들의 심심풀이식 내기는 「애교」에 가깝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유명학원 원장과 여의사의 거액도박사건은 사정이 다르다. 일부 부유층의 삐뚤어진 행동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친 측면이 적지 않다. 비록 전문도박꾼의 꾐에 빠졌다고는 하나 한판에 수억원씩 돈을 걸고 외국에까지 드나들며 도박판을 벌였다니 서민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심각한 경제불황 속에서 대부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살아가는 마당에 부유층들이 과연 얼마만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는지 의심케 하는 일이다 ▼국가적인 위기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간의 일체감이다. 지도층 인사들이 수십억원의 돈을 도박으로 탕진하는 모습을 보고 서민들은 무엇을 느낄까.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에서 밀려나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가장이나 아이들 과외를 위해 부업전선에 뛰어드는 주부들에게 자칫 삶의 의욕을 잃게 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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