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지하/김현철씨 청문회를 보고

  • 입력 1997년 4월 26일 08시 16분


사람들이 너나없이 모두 「현철」이라고 부르니 나도 그렇게 부르는 수밖에. 김현철. 오늘 아침에야 TV로나마 처음 보는 얼굴이다. 별명이 「탱크」라 한다. 또 패거리까지 합쳐 「봉선화」라 일컫기도 하는 모양이다. 소산(小山)이니 소통령(小統領)이니하며 세상을 주물럭거리다가 이제는 과묵의 미덕까지 발휘하여 「자물통」이라. ▼ 「몸통」이 나왔다… 오늘보니 자그마하고 나긋나긋하여 천하비리(天下非理)의 주인공같지 않다. 그럼에도 저돌적이라 해서 「탱크」라고 하나 보다. 그 「탱크」가 눈물을 흘린다. 거짓눈물은 아닌가 보다. 내 마음도 따라가려 한다. 요술(妖術)같다. 깜짝 놀라 내 스스로 허리를 고쳐 세운다. 70년대 걸핏하면 눈물바람이던 고 박정희씨를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거짓눈물, 역시 거짓이다. 저런 사람이 이권과 국정에 개입하고 각종 의혹에 관여했다니 놀랍다. 얼마전에는 우람한 체격의 홍모씨가 스스로 깃털이라 하여 웃음을 사더니 이제 몸통이 나왔다해서보니 문자 그대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한보(韓寶)는 보통 스캔들로 지나칠 수 없는 대사건이요 우리 사회를 뿌리째 갉아먹는 병균이 육안(肉眼)으로 잡힌 셈이다. 우리 사회의 사활이 걸린 대수술이다. 이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진실이다. 하나라도 거짓말을 용납하면 그만큼 근치(根治)는 어려워져 불과 얼마 안가서 또 터지고 무너지고 자르고 꿰매고 해야 한다. 이번에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는 각오하에 국회나 검찰이나 두눈을 부릅떠야 할 것이다.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자. 경륜도 포부도 지위도 없는 어린 사람이 단지 측근이란 이유만으로 아비를 수렴청정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는 꼴불견이다. 지공무사(至公無私)는 끝나고 망조(亡兆)의 시작이다. 여당 국회의원이라 하여 틈을 벌려주고 몰아세우지 않는 것도 꼴불견이다. 이 사건은 국가의 기초를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멍청한 놈이 이 따위 국정농단이 판을 치는 나라에 비싼 세금내고 살고 싶어 할 것이냐. 또 무엇을 갖고 북한에 대해 체제와 제도의 우월성을 떠들 것이냐. 이제 곧 얼마 안있어 통일기류도 양성화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따위 비리를 들고나와 우리 삶의 풍요로움을 전시할 것인가. ▼ 국민이 눈 부릅뜨자 사방이 같은 소리다. 무엇인가 새롭고 평화로운 삶의 운동이 싹터 정신을 비롯, 신선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만약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또다른 독재자를 불러들이는 역사의 병을 앓게 되리라고.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판국이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을 선거에서 퇴장시켜야 한다. 한 독재자와 그의 가족이 신성한 국민권력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시민권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단 한사람이라도 좋다. 정신 멀쩡한 사람의 멀쩡한 정말이 법처럼 우월성을 갖는 세상을 만들자. 그것은 시민자신이 자치(自治)권력을 더 많이 갖는 길뿐이다. 김지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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