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청문회의 「결정판」인 金賢哲(김현철)청문회는 주요출연자인 현철씨와 金己燮(김기섭)전안기부운영차장 朴泰重(박태중)심우대표 朴慶植(박경식)G남성클리닉원장 등 4인의 증언이 주요 쟁점마다 엇갈려 의혹을 규명하기는 커녕 확대재생산했다.
현철씨와 김전차장 박대표 등 3인의 진술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일치했으며 그 반대편에 선 박원장과 현철씨 등 3인은 서로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이 때문에 대질신문을 통해 「위증자」를 가려내 처벌함으로써 거짓말에 무력한 한보특위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철씨 진영과 박원장의 일치하지 않는 증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철씨의 정부인사 개입부분.
박원장은 그 예로 『지난 95년2월 신라호텔 647호에 갔더니 吳正昭(오정소)전안기부1차장이 현철씨에게 90도 각도로 인사하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는 걸 봤다. 그 자리에 김전차장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현철씨는 『그곳에는 간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특위위원들이 신라호텔관계자의 증언과 객실내 좌석배치도까지 보여주며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몰아붙였으나 현철씨는 요지부동이었다.
김전차장도 『신라호텔 647호에는 간 적이 없다』고 했고 박대표도 『현철씨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며 연합전선을 폈다.
그 다음 쟁점은 현철씨와 鄭譜根(정보근)한보그룹회장의 친분설에 관한 증언에서 비롯됐다. 박원장은 『현철씨가 95년 가을경 李晟豪(이성호)전대호건설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태중이하고 보근이하고 술자리를 만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현철씨는 『94년 가을 고교선배인 오세천 청와대비서관의 소개로 중국음심점에서 한번 만났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별다른 물증이나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하지 못한 특위위원들은 현철씨의 부인에 속수무책이었다. 박대표도 『정회장에 관해 들은 적이 없다. 나는 만난 적도 없다』며 현철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
현철씨 사조직의 활동자금지원에 대해서도 한쪽에서 거짓말을 했다. 박원장은 『박대표가 스스로 한달에 1천만원씩 현철씨에게 대준다고 말했다』고 전했으나 박대표는 『95년 중반부터 96년10월경까지 직원 3명의 인건비를 대줬다. 월 3백만원정도 된다』고 반박했다.
현철씨도 『생활비와 개인사무실 운영비는 할아버지와 박대표가 도와줬다. 생활비와 활동비를 합쳐 월 3백만원정도 된다』며 비슷한 증언을 했다.
4.11총선 공천개입에 대해선 박원장은 『형에게 공천을 준다고 했다. 韓利憲(한이헌)씨 선거구도 조정해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으나 현철씨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현철씨는 『당시 신한국당 姜三載(강삼재)사무총장 등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일부 인사를) 추천했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번복해 의혹을 샀다.
이밖에도 메디슨 무혐의처리 문건의 출처 등 크고 작은 쟁점을 둘러싸고 현철씨 진영과 박원장의 진술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원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