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여름 영국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배양 실험하다가 배양접시를 실험실 한구석에 버려둔 채 휴가를 떠났다. 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은 배양접시를 씻기 위해 소독제에 집어넣다가 접시에 생긴 푸른곰팡이 주위에 박테리아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연이었다. 플레밍은 이 곰팡이를 플라스크에 넣어 배양하면서 페니실린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로부터 10년 뒤 옥스퍼드대학의 병리학자 플로리와 생화학자 체인이 페니실린에 다시 주목, 순수 페니실린을 추출해내고 41년 마침내 그 탁월한 약리효과를 증명했다. 페니실린의 제2의 발견이자 세계 의약계에 엄청난 혁명을 일으킨 최초의 항생물질이 탄생한 것이다. 플레밍, 플로리, 체인은 그 공로로 45년 노벨의학상을 공동수상했다. 제2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 것은 페니실린 덕이었다는 찬사도 있었다
▼페니실린 이후 수만종의 항생물질이 발견돼 그중 1백여종이 현재 약으로 쓰이고 있다. 세계 의약계는 「기적의 항생제」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21세기가 시작되기 전 모든 박테리아성 질환이 정복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사정은 오히려 악화됐다. 인류가 항생제를 개발하면 할수록 박테리아도 살아남기 위해 계속 유전자변이를 일으키면서 내성을 길렀다. 그 결과 이젠 박테리아의 종말이 아니라 항생제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비명까지 나오고 있다
▼그 항생제 내성률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는 연구가 나왔다. 페니실린 내성률이 70.3%로 아시아 12개국 가운데서도 가장 높다는 것이다. 항생제의 약발이 듣지 않는 것은 항생제를 아무데나 불필요하게 많이 쓰기 때문이다. 「약 좋다고 남용말고 약 모르고 오용말자」는 표어는 항생제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이다. 인간이 박테리아에 정복당하지 않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