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짜증나는 한보특위 청문회는 우리의 정치 사회 문화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도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왜 그럴까. 미국청문회에 출석하는 증인은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한다. 그리고는 대체로 진실을 털어놓는다. 양심과 정의 그리고 도덕을 배신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 때문일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정답에 가까운것 같다. 법과 질서, 피땀을 흘려 세운 도덕과 양심의 사회를 거짓으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가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선진사회는 그렇다. 거짓을 죄악이라고 어릴때부터 가르치고 있다. 명예를생명으로 삼는 정치인 군인 공무원 언론인은 「진실」을 지켜야할 제1의 덕목으로 여긴다. 닉슨이 도청자체보다 도청사실을 부인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직을 떠나야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의 청문회가 잘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의원들의 높은 도덕성 때문이다. 상원은 의원 모두가 잠재적 대통령후보감일 정도로 권위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자리에서 진실을 부인, 왜곡하거나 입을 다물 수는 없다. 증인에게 고함과 질타 비방을 퍼붓는 한보특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93년 독일의 차기총리후보로 인기가 높았던 사민당의 엥홀름당수가 하루 아침에 정치생명이 끝난 것도 거짓말 때문이었다. 주지사 선거당시 불법선거자금을, 그것도 참모가 받은 것을 부인했다가 들통이 난 그날로 정계를 은퇴해야 했다. 돈을 준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했다.
한보청문회는 증인들을 불러 겁주고 혼낸 것밖에 하지 못했다. 반면 선진국의 청문회는 관련자의 처벌보다 진실을 밝혀내고 잘못된 관행이나 법을 고쳐 부정부패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다.
한보청문회는 증인이나 특위위원들 모두 이성보다 감정이 지배한 지극히 「한국적인 모습」만 보여 주었다.
최맹호<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