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은 앞으로 통계숫자상의 물가지수(指數) 관리보다 실제 소비자물가를 낮추는 구조관리쪽으로 물가정책방향을 바꿀 모양이다. 사실 지금까지 정부의 물가관리는 지수관리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제운용의 큰 틀속에 물가억제 목표선을 정해 놓고 갖가지 편법과 행정력을 동원해 물가지수 잡기에만 급급했다. 물가안정기조가 흔들리면 그 요인이 무엇인지는 외면한 채 세무조사와 행정지도를 벌이느라 법석을 떨고 심지어는 시장간섭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물가가 잡힌다면 또 모르지만 오를 물가는 죄다 오르면서 시장기능만 왜곡시켜 놓았다.
신뢰도에 문제가 있고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와도 동떨어지는 물가지수관리에 더 이상 매달려서는 안된다. 물가지수산정 대상품목의 가격만 억누르는 식의 물가관리는 당장 지수상의 안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폐해를 가져온다. 물가지수 산정방법 개선과 조사대상품목 조정도 필요하다. 현행 물가지수는 종합물가는 물론 생활물가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올들어 지난 3월말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작년 같은기간 대비 4.5%, 작년 말에 비해서는 1.7% 올랐다. 올 물가억제목표선이 4.5%이고 보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이같은 상승률은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 경쟁국의 물가상승률에 비해서도 두배 이상 높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실제 물가수준이다. 서울물가는 세계 34개 주요도시중 네번째로 높다. 뉴욕물가를 100으로 잡았을 때 서울은 119라는 것이 유엔의 소비자물가 비교치이다. 실정이 이렇다면 지수상의 물가관리는 큰 의미가 없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물가정책 방향을 지수관리보다 생활물가 안정쪽으로 잡은 것은 옳다. 고(高)물가의 주범이 시장의 경쟁제한적 요소, 불합리한 유통구조, 잘못된 소비자 정보때문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국내 유통망이 대기업군의 제조업체에 장악되어 경쟁제품의 판매를 막고 판매지역 제한 재판매가격유지 등을 통해 사실상 소비자 가격을 통제하는 실정에서는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신(新)가격창조는 기대할 수 없다.
수입품의 폭리도 문제다. 공산품시장이 99%이상 개방됐으나 시판가격은 내리지 않아 개방이득은 소비자가 아니라 수입업자가 독점하고 있다. 수입가격의 공개, 외제품과 국산품의 품질비교, 부당이득의 세금 환수, 병행수입제 강화 등을 통해 시판가격을 낮추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우선 수입농축산물의 부과금 폐지, 의약품 표준소매가제 철폐, 중간 유통기관 정비, 참고서 잡지값의 담합금지 조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개선의 여지는 이것 말고도 훨씬 더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