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프린세스 메이커」등 컴퓨터게임 『인기』

  • 입력 1997년 5월 14일 10시 15분


회사원 조모씨(28)는 요즘 살 맛이 안 난다. 열 세살 난 딸 「엄지」가 불량한 애들과 어울리고 성적은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 툭하면 가출해 속이 상하고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다. 어젯밤에도 경찰서에 있는 딸을 데려왔다. 교수로 키우겠다는 꿈이 점점 멀어지는 허무함.앞으로 5년 안에 독립할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 데 앞이 캄캄하다. 게임을 중간에 끝낼까 생각도 했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엄지의 얼굴이 아른거려 다시 「PM2.exe」를 더블클릭한다. 일본에서 개발돼 몇년전 국내에 선 보인 「프린세스 메이커」(공주 만들기·PM). 이 「애 키우기」게임 때문에 초중고생과 직장인 수만명이 김씨처럼 열병을 앓았다. 딸을 공주나 교수로 키워낸 사람들은 「자식 키운 보람」도 느낀단다. 마니아들은 이 게임을 이제 한 물 간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김씨처럼 뒤늦게라도 PM을 접하는 사람은 여지없이 며칠 밤잠을 설치고 만다. 한글버전이 없던 때 이 게임을 하자고 일어학원을 다녔던 게임광들은 오는 6월 출시 예정인 프린세스 메이커3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 PC통신이나 인터넷에는 벌써부터 「PM3」에 대한 추측이 무성하다. 게임 장면을 볼 수 있는 일본 사이트들은 정신 없이 북적댄다. PM이 처음 인기를 끌 당시부터 여러 편의 아류작이 나와 PM못지 않은 재롱을 떨었지만 PM의 인기는 따라잡지 못했다. 올해는 다르다. 모성본능을 깊이 자극하는 작품들이 최근 시판된데 이어 출시를 기다리는 것들도 있어 게임광들은 가슴이 설렌다. 가장 대표적인 게 「신혼일기」. 지난주 선 보인 이 작품은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아내를 돌보며 부부생활을 해 나간다는 줄거리. 화려하고 관능적인 그래픽 때문에 일본게임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신토불이 국산이다. PM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 일본에 수출돼 학생과 직장인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주 전 출시된 「에베루즈」는 장차 국가운명을 책임질 인재를 키워내는 게임. 다양한 대사와 사건, 깔끔한 그래픽이 돋보이며 게임 난이도는 조금 낮은 편. 일본 후지쓰사가 개발, 삼성전자가 한글화한 제품이다. 이처럼 사람을 키워내는 육성 시뮬레이션의 인기가 오래 가는 이유는 허무맹랑한 전투기 조종사나 군지휘관이 아닌 누구나 될 수 있는 부모와 나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아이를 잘 못 키워도 잠시 가슴이 아플 뿐 대가는 치르지 않아도 되고 내 방식대로 자식을 키워 나가며 부모의 교육방식에 대한 불만을 푸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홍성도교수는 『부모나 어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이 게임은 확실히 교육적』이라며 『그러나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할 경우 게임이 보여주지 못하는 사회생활의 여러 측면들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너무 환상적으로만 바라볼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성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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