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년 멕시코에 상륙한 스페인 대위 코르테스. 스페인 역사가들은 그 사건을 멕시코의 시작이라고 썼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가들은 찬란했던 중미문명의 잔인한 종말이라고 기록한다. 그 주인공들은 톨테카, 테오티우아칸, 아즈테카 그리고 마야. 남미의 잉카문명도 그 여파로 함께 사라졌다. 중남미문명의 원조인 멕시코의 유적지와 그림 같은 바다 카리브해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해발 2천2백m 멕시코고원. 하늘이 한치 더 가까워 보이는 이 고지대 평원에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난다. 여기는 9백년경 멸망한 테오티우아칸 문명의 중심지. 멕시코에 존재한 최초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현대 멕시코와 중남미 문화의 밑그림이 된 문명사회의 유적이 남은 곳이다.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40㎞만 달리면 테오티우아칸이다. 이곳은 멀리 멕시코계곡의 고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그 중심은 남북으로 2㎞나 곧게 뻗은 폭 40m의 대로 「사자(死者)의 거리」. 웅장한 피라미드와 제단, 왕궁과 주거지, 성벽 등 태양신을 숭배하며 살던 문명인들의 돌 유적이 거리 양편에 산재해 있다. 그 규모와 예술적인 아름다움, 기하학적인 배치가 당시 발달한 문명의 모습을 웅변한다.
사자의 거리로 들어섰다. 두 개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여행자를 압도한다. 하나는 거리의 북쪽 끝에 있는 「달의 피라미드」(높이 43m, 밑동 120m×150m), 다른 하나는 대로 한 중간 동편에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높이 66m, 밑동 222m×225m). 규모가 작은 「케찰코아틀신(神) 피라미드」는 그 오른쪽(남쪽)에 있다. 그러나 한 변이 4백m나 되는 정사각형 성벽이 이 피라미드를 한가운데 놓고 둘러싸고 있어 그 성채의 규모 역시 거대하다.
사자의 거리에는 이밖에도 유적들이 많다. 작은 규모의 제단과 계단, 제사장과 귀족들의 집터와 왕궁터가 남아 있다. 피라미드 정면에는 커다란 광장과 제단이 있다.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는 생명의 근원이라고 믿었던 태양숭배 신앙의 성스러운 제단. 그러나 산사람의 가슴을 갈라 뛰는 심장을 꺼내고 인육을 먹었던 참담한 제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런 광신적인 믿음은 「킨토솔」이라는 인디오의 전설에서 연유한다. 네번째 태양이 테오티우아칸을 비추다 사라지자 신들에게 경배드리던 인간도 몰사했다. 절망에 빠진 신들이 이곳에 모여 상의한 끝에 그중 두 신이 각각 태양과 달의 신이 되었다. 그러면서 태양의 신이 태양의 운행을 위해 인간의 피를 요구했다. 태양이 다시 떠오르지 않는 날 멸망할 것이라고 믿었던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은 태양이 다시 떠오르길 빌며 피라미드 앞에서 제사를 올렸다. 「피의 제전」. 그것이 정기적으로 이 피라미드 정상에서 펼쳐졌다. 이 잔인한 의식은 1521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테노치티틀란(현 멕시코시티)에 당도했을 때도 계속 됐다. 고도의 수학과 천문학을 바탕으로 정확한 태양력을 사용했던 그들이 이 잔인한 의식 때문에 미개한 야만인으로 몰려 멸망하고 말았다.
<조성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