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賢哲(김현철)씨 구속은 현직대통령의 아들이라도 죄가 있으면 법망을 피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다. 권부(權府)의 그늘에 도사려 국정을 농단한 그를 정권 당대에 단죄(斷罪)하게 된 것도 역설적으로 우리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했음을 일깨워준다. 법은 더도 덜도 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5개월간 국민이 치른 대가는 크다.
그러나 현철씨의 구속이 이 숨막히는 한보터널의 끝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검찰은 그가 이권청탁의 대가로 기업인들로부터 65억원을 받았음을 확인하고 특가법상의 알선수재 및 탈세혐의로 구속했지만 이는 현철씨와 관련된 의혹의 별건(別件)에 불과하다. 한보특혜대출 연루설은 물론 92년 대선자금의 수금과 잔여분의 관리 유용 등 의혹의 핵심은 여전히 안개에 덮여있다. 국가정보를 빼돌리고 나라의 인사에 개입해 국정을 농단한 비리 역시 그 진상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더욱이 현철씨는 구속 직전까지도 표적수사니 여론재판이니 하며 사법처리에 반발했다. 검찰 소환에 앞서 그는 측근에게 결백을 강조하며 자연인 김현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맞대응하겠다는 구술서(口述書)를 남겼다니 한심하다. 누구 때문에 나라가 이처럼 뒤죽박죽이고 국정은 끝없이 표류하며 아버지인 대통령의 리더십마저 위기에 처했는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철씨가 이처럼 반성없는 언행을 일삼는 것은 아직도 그를 감싸주는 세력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최근 여권의 어느 대선예비주자는 공개토론장에서 현철씨가 유능하고 견실한 청년으로 보였다는 등 두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심(金心)을 업어 낙점을 받으려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나 이런 시각들이 현철씨의 버릇을 잘못들인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검찰은 일단 현철씨를 구속했지만 한보―현철비리나 대선자금의혹 등 어느것 하나 말끔하게 정리되고 해결된 것은 아직 없다. 검찰은 공연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철씨의 기소시한내에 추가수사를 통해 제기된 모든 의혹의 실체를 철저히 밝혀 국민앞에 있는 그대로 공개해야만 한다.
되돌아보면 지난 2월 검찰이 현철씨를 1차소환했을 때 제대로 사법처리를 했더라면 지금같은 위기상황은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80여일간 나라가 온통 현철씨 문제에 매달려 정치는 엉망이 되고 경제와 민생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현철씨가 구속되자 청와대측은 우선 대변인을 통해 유감과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금주중으로 예정된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입장표명」이 주목된다.
국정표류의 더이상 장기화는 누구도 원치 않는다. 이제는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김대통령의 마지막 결단이 중요하다. 우리가 대통령의 입장표명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접화법보다는 국민앞에 직접 나서서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한보터널에서 벗어나느냐 못하느냐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