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한국 바둑이 흔들리고 있다.
주장(主將) 李昌鎬(이창호)가 부진의 늪에 깊이 빠져 있고 중견기사들마저 이창호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이 틈새를 중국과 일본이 파고들면서 한국 바둑은 「강판」 위기에 몰리고 있다.
한국 바둑의 위기 징후는 지난달 중순 나타났다. 후지쓰배 본선2회전에서 이창호 劉昌赫(유창혁) 徐奉洙(서봉수)9단이 모두 패배, 8강에 한명도 오르지 못하는 이변이 벌어진 것. 16강에 고작 3명이 오른 것도 문제지만 8강 문턱을 한명도 넘지 못한 것은 91년이후 처음. 더구나 끝내기의 신산(神算)으로 불리는 이창호9단은 중국의 무명 周鶴洋(주학양·21)7단에게 반집차로 패배해 충격을 더했다.
두번째 징후는 이달 중순 끝난 TV바둑아시아선수권 대회. 이창호9단은 전년 우승자로 시드 배정을 받았고 曺薰鉉(조훈현)9단 鄭壽鉉(정수현)8단이 출전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 대회에서 3전3패,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9단은 중국의 兪斌(유빈·30)9단에게 1백85수만에 불계패해 대회 3연패를 놓쳤다. 유9단은 중국내에서도 우승 기록이 전혀 없는 「무명의 중견」. 이9단은 마치 「중국 공포증」에 걸린 듯 힘을 쓰지 못했다.
93년이후 한국의 국제대회 우승확률은 66∼80%. 95년 중국의 馬曉春(마효춘) 돌풍에 한때 밀린 것을 제외하면 한국의 독무대였던 셈이다.
그러나 금년들어 상황이 돌변하고 있다. 조훈현9단이 동양증권배를 획득, 체면을 유지한 것을 빼고 후지쓰배와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등에서 난조를 보였다. 3개 대회중 1개 대회만 건진 것. 앞으로 남은 기회는 오는6월부터 시작되는 삼성화재배 하나뿐이다.
결국 이 대회를 놓친다면 한국의 국제대회 우승확률은 25%로 급락한다. LG배 결승에 이창호 유창혁9단이 올라있지만 이는 지난해 결정된 것이어서 올해 한국바둑이 위기에 흔들리는 기류와는 무관한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의 「간판」 이창호의 부진이다. 무명에 가까운 중국기사에게 연패를 당하고 국내에서도 타이틀(배달왕)을 빼앗기는등 요즘 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중국이 빠른 세대교체를 보이고 일본의 중견기사들이 국제대회로 눈을 돌리는 상황에서 국내에 새로운 스타탄생이나 중견의 분발이 없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최수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