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오랜, 강산이 두번쯤 변해가는 나이들이라 친구들을 만나면 으레 보약에 대한 얘기가 심심치않게 등장하곤 한다. 몇십만원짜리를 남편에게 지어주었다느니, 자기 몸도 예전같지 않아 내친김에 자기 약도 함께 지었다느니 하면서 자랑을 늘어놓는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명언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은 보약을 먹지 않아도 될만큼 식구들 모두 건강한 편이라 지금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데 지난 여름 아들아이가 심하게 앓고 난 후 다른 때와 달리 맥이 없어보였다. 막연히 보약이라는 걸 먹여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용이롭지 못했다. 가끔 머리가 아프시다는 시아버님, 다리가 시큰거린다는 시어머님이 계시다. 부모님을 모른체 하고 자식의 보약만 지어오자니 눈치가 보일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남편이 피곤하다고 할 때마다 늘 가여웠다. 마음 같아서는 식구수대로 약을 짓고 싶지만 형편이 여의치못해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어느날인가 남편이 불쑥 거금 15만원을 내밀며 아들아이의 보약을 맞춰 놓았으니 찾아다 먹이라고 했다. 얼떨결에 돈을 받아들고 아들에게 보약을 먹일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으나 그 기분도 잠시, 어른들께 죄송해서 어떻게 약을 먹일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지어놓은 약을 안찾아올 수는 없는 일. 약을 갖고 와 아무래도 죄를 지은 것 같아 『아범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래도 행여 제자식만 위한다고 노여워하실 것 같아 얼굴을 들 수 없고 등에 땀이 나고 몸이 따가워옴을 느꼈다.
어쨌든 아침 저녁으로 정성껏 약을 데워 먹였다. 하지만 구석진 곳에 보이지 않게 놓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먹였으니 효과가 있을는지….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부모노릇 한답시고 자식 노릇을 제대로 못해드려서…. 형편이 좀 나아지면 두 분께 꼭 보약을 지어올릴게요. 오래오래 사세요』
연복희(충북 청주시 사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