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파동 이후 국정이 5개월여 표류를 계속하는 동안 청와대 관계자들은 입버릇처럼 『이제 나라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왔다.
한보사태와 대선자금에 관한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입장표명」이 검토됐던 것도 바로 대통령 아들까지 구속된 미증유의 사태를 사과와 고백으로 매듭짓고 「평상적 국정운영」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대선자금에 대해 공개할 자료가 없다』는 김대통령의 공개거부발언을 고비로 입장표명은 일단 물건너갔다.
설상가상으로 이 발언에 때맞춰 민정수석실측이 『광역자치단체장과 정치인을 포함, 고위공직자 70여명을 내사 중』이라며 「임기말까지 중단없는 사정방침」을 들고 나와 정치권은 벌집쑤신 듯한 분위기다.
이 두개의 「사건」이 김대통령의 일관된 정국해법 프로그램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뭔가 청와대 내부에서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92년 대선자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 이후 잠복해오던 이 문제가 불거진 결정적 계기는 김대통령의 「한보자금 수수설」과 金賢哲(김현철)씨의 대선자금 잔여금 관리의혹 때문이었다.
청와대측은 이 두가지 의혹에 대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반론 외에 아직 명쾌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느닷없이 민정수석실이 들고 나온 사정방침만 해도 「통상적 국정운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청와대쪽의 종래 주장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안정된 국정운영을 지향한다면 묵묵히 사정활동을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사정대상으로 광역자치단체장과 정치인들까지 거론돼 야권의 격렬한 반발을 사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청와대 안에서조차 나오는 형편이다.
이같은 청와대의 태도가 『어차피 대선자금 문제를 해명해봐야 정쟁의 빌미만 제공하는 만큼 「뻔뻔하게」 가자』는 논리에서 나온 것이라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성의있고 진솔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이동관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