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누군가 엿듣고 있다

  • 입력 1997년 5월 25일 19시 56분


몇해 전 미국의 한 신문에 「도청과의 전쟁 선포」라는 제목으로 미국 정부가 도청방지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세계 지도자들간의 전화통화내용이 불법적으로 도청당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서방 정보기관들에 의해 밝혀진 직후의 일이다. 당시 기사는 보안상 100% 안전한 외교용 군사용 전화회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까지 고발했다. 한국의 상황도 다를 바 없다. 도청기술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남의 이야기를 쉽게 엿들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불어 「내 전화도 도청당하는 건 아닐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고 그 밑바탕에 깔린 사회전체의 불신풍조도 커져만 가고 있다. 「전화도청방지기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보도(본보 5월21일자 39면)가 나간 뒤 본사 사회부로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도청방지기를 설치하고 싶으니 판매처를 가르쳐 달라는 내용이었다. 판매업자들에 따르면 도청방지기를 주로 구입해 간 곳은 기업체나 정 관계 사무실이었다고 한다. 업무상 기밀유지가 필요한 곳이라는 점에서 수긍이 갔다. 그러나 문의전화를 걸어온 사람중에는 일반인들이 상당수에 달했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으로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이처럼 도청에 관한 불안감이 팽배해진다면 언젠가는 전화도청 방지기능이 첨가된 전화기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도청방지장치를 설치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까. 93년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에는 「불법적으로 도청을 하는 자는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처벌규정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 법이 적용된 사례는 미미하다. 95년의 경우 전국적으로 45명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입건됐으나 그중 21명만 처벌됐을 뿐이다. 도청 근절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국가기관이 공공연히 도청을 자행하고 있다는 국민의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 한 도청방지기의 수효는 늘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하다. 금동근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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