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름이 이래요?』 가방을 정리하다가 나온 명함을 보며 아내가 웃는다. 『왜, 어때서?』 『꼭 애들 이름 같아요』 『아니 이름에 애 어른이 따로 있나?』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나도 조금은 그런 느낌을 받았던 이름이었다.
이름도 시대에 따라 유행을 많이 탄다. 요즘 아이들 이름은 어쩌면 그렇게 예쁜지. 소아과 입원 환자 현황판에 적힌 이름을 보노라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이슬이, 단비, 여울이, 센이, 누리…. 또 누구는 그걸 보고 『이름을 예쁘게 지으면 병이 잘 생기나 봐』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어디 아픈 아이들만 이름이 예쁜가. 요즘 아이들 이름이 다 그렇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왜 웃어요?』 『당신은 다른 사람 이름을 이야기할 형편이 아닐텐데』 아내는 얼른 입을 다문다. 장인은 넷째 딸을 얻고는 심기가 불편하셨던지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의 이름을 붙이셨다. 「의심」이라고. 아내는 그 이름 때문에 학창 시절에 마음 고생을 꽤 겪었다고 한다. 간첩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 도덕시간에는 반 아이들이 모두 자기만 쳐다보았고, 신학기가 되면 영락없이 곤욕을 치렀다. 같은 반에 비슷한 수준의 이름이 또 있기라도 하면 정말 쥐구멍을 찾아야 했다. 「고민자, 최선, 최의심…」 출석을 부르던 선생님은 더 이상 참지를 못한다. 『이 반 학생들은 이름이 왜 이래』 웃음바다 속에서 아내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이름에 얽힌 사연은 대학시절 절정에 달했다. 아내가 나를 만나기 전에 데이트하던 상대가 있었는데 이름이 「진범」이었다. 혼자 있으면 아무 문제가 안될 이름인데, 아내 이름과 붙이고 보니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의심과 진범」이라, 정말 천생 연분이라고들 했다. 그렇지만 정작 결혼은 진범은 커녕 용의자도 아닌 나하고 했다.
물론 장인은 당신이 지은 이름이 수난을 당한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우리가 둘째 아이를 얻었을 때도 장인은 그 날로 아이의 이름을 지어 보냈다. 첫 아이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 것을 서운해하시더니 이번에는 선수를 치신 것이다. 이름도 좋았다. 「서화」 요즘 유행에는 조금 덜 어울리지만 불만이 있을 수 없는 이름이다. 큰 아이의 이름이 「성하」만 아니었더라면. 급할때 이 둘을 구분하여 부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혀를 몇 번 깨물고 난 뒤에야 요령을 터득했다. 중간 정도 발음으로 대충 부르면 저희들이 알아서 대답을 하지 않는가. 그렇게 되고 나니 확실히 좋은 이름이 되었다. 역시 이름이 좋고 나쁜 것은 쓰기 나름이다.
그 누군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아무개가 장관만 못합니까?』라고 외치니 통하지 않는가.
황인홍〈한림대 교수 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