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세후보는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선거비용을 몇배씩 초과하는 선거자금을 사용하였으면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는 선거비용한도에 훨씬 미달하는 금액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하였다. 이 점에서만도 세 후보는 선거법을 위반하고 또 선관위에는 허위 신고를 하는 이중 잘못을 저질렀다.
▼ 여야 반성없이 政爭만 ▼
그러나 당시 선관위나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이나 시민단체들도 이러한 잘못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선거에서 패배한 김대중 정주영 두 후보조차도 대선자금의 과다한 사용에 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왜 그랬는가. 당시에는 부정선거나 관권선거가 관심의 대상이었지 후보들이 선거법을 지키는가 안지키는가, 또는 후보나 정당이 얼마나 많은 선거비용을 썼는가는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후보들로서는 자신도 선거법을 위반한 처지에서 남의 잘못을 따지고 나설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4년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14대 대선의 선거자금이 새삼스레 중요한 정치쟁점으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15대 대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국민과 언론이 원하는 것은 다음 선거에서는 정경유착의 가능성이 있는 엄청난 규모의 선거자금 사용을 차단하여 부패정치의 소지를 없앰과 동시에 과다한 대선자금의 사용에 따른 여러가지의 경제 왜곡현상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당들은 과거의 대선에서 사용한 선거자금의 규모를 가능한 한 솔직히 밝히고 사과한 후에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여야 합의로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하는 야당들의 의도는 딴데 있는 것 같다. 당시의 선거법위반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부담을 벗어나게 된 야당지도자의 입장에서는 대선자금문제를 12월선거에까지 끌고가 대통령을 궁지로 몰면서 여당의 차기 대통령후보 흠집내기를 계속하여 반사적 이익을 얻으려는 정략인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당리당략적 의도가 장기화할 경우에는 오히려 야당이 자충수를 두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야당도 금액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선거법이 정한 한도 이상의 선거자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보다 더 중요한 점은 국민이 진정 바라는 바가 돈 적게 드는 선거를 통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부패정치를 더이상 계속하지 않도록 정치권 전체가 반성하라는 것이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구태의 재연을 보자는 것이 아니다.
▼ 제도 개선 머리 맞대야 ▼
따라서 정치권은 대선자금문제를 정략적 차원에서 이용하면서 성명전만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과다한 선거자금을 사용하지 않고도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여야공동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여야당이 14대 대선때 사용한 선거자금의 불법성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문제는 15대 대선에서 국민이 투표로 심판하면 될 것이다. 14대 대선자금문제와 관련해 국민이 원하는 것은 똑같이 원죄를 짓고 있는 여야당의 무익한 선전공세를 되풀이해서 듣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치권 자체의 반성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신명순 <연세대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