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세무조사 「무디어진 칼」

  • 입력 1997년 5월 27일 20시 02분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난 한 경제부처 고위공무원의 회고 한토막. 『하루는 모처에서 전화가 왔어요. 세무조사를 받게 된 朴泰重(박태중)이란 사람이 金賢哲(김현철)씨와 막역한 사이니 좀 선처해달라고요』 박씨가 김씨 재산관리인이었다는 걸 훗날 알게 됐다는 그는 『온갖 청탁을 받았을 국세청이 박씨에게 「용감하게」 세금을 매겼으니 국세청이 많이 좋아졌구나 하고 내심 생각했다』고 말했다. 요즘 국세청은 이런 여론을 듣고 있는 듯 꽤 고무돼있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사례는 국세청이 정말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물리쳐야 할 유혹이 이제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연간 4천만원이상의 금융소득을 올린 사람들 가운데 자금출처가 불분명한 주부나 미성년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 하나다. 학계에서는 『세금은 무덤까지 따라간다는데 탈세 혐의가 짙은데도 세금추징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징세당국의 기본임무를 망각한 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보로부터 「떡값」을 받은 정치인에 대한 국세청의 대응도 미지근하다. 국세청은 「해당 정치인에 대한 증여세조사는 관할 주소지 세무서장이 결정할 일이며 전례가 없던 일이라 신중히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尹建永(윤건영)연세대교수는 『대가없는 돈을 받은 사람은 정치인이든 누구든 증여세를 내야 한다』며 『현실을 감안해 신중론을 펴려면 차제에 정치자금이 공익을 위해 쓰였다는 증빙을 갖추면 과세하지않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불황에 따른 세수부족이 염려되는 때다. 국세청의 신뢰회복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이기도 하다. 허문명 <경제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