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앞에서]기업의 「홍익인간」

  • 입력 1997년 5월 27일 20시 02분


몇해 전 영국의 총리가 교통법규를 위반해 벌금을 냈다는 해외토픽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 국민들은 고급공무원이 벌금을 낸다는 소식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영국이라는 나라에는 공인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신이 살아있던 적이 있었다. ▼ 옛 선비정신 배우자 ▼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금전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지도자로서의 직분을 다하고 국민과 역사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희생정신도 가지고 있었다. 서양에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선비정신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사고에 이어 대형 금융부정사건 등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고 있다. 한국에서는 연극을 보러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고나면 주인공이 바뀌면서 새로운 사건들이 터지니까 뉴스를 팔아먹는 사업을 하면 국제수지개선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듣기도 했다. 선조들의 훌륭한 선비정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대신 오그라진 소인정신과 배금주의 보신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면 기업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사회지도층 인사에게 선비정신이 있었다면 기업인에게도 널리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자 애를 쓰는 홍익인간의 정신이 있다. 풍요로운 세상,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는 기업의 사명이 바로 홍익인간의 정신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나 자신 기업을 경영하는 한사람으로서 과연 홍익인간의 정신에 충실해 왔는지, 모자람은 없었는지 자문하면서 때때로 스스로를 채찍질해 볼 때가 많다. 기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계속 성장한다. 부도를 내지 않아야 하고, 오래 살아야 하고, 기업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인격도 갖추어 나가야 한다. 부실공사를 일삼고 특혜로 돈을 버는 것은 기업이 걸어야 할 바른 길이 아니다. 이런 변칙은 암이나 독약같이 종내는 스스로를 망치게 한다. 이제 우리 기업도 세계적 기업으로 커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정서속에 면면히 흐르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정신적 기둥으로 삼고 경영력과 기술력으로 당당하게 승부하려는 각오를 다져야 하겠다. ▼ 지도층 정신력이 중요 ▼ 아직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와 진보없이 그대로인 상태에 있다. 이는 그 나라의 정치 사회 지도자들이 깨지 못하고 국민과 공동체를 위한 공인정신 공복(公僕)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각 분야의 지도층 인사와 기업 경영자는 자라나는 후손을 위해서라도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선비정신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앞장서서 구현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삼성 임직원들에게 「인류를 위한다」는 것이 분수에 넘치는 말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국제사회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말기를 자주 당부한다. 한 나라 역사의 진보와 퇴보가 사회지도층의 정신력에 달려있다는 로마제국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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