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부인(52)은 요즘 우울합니다. 몇년 전만 해도 억척스럽다는 소리를 들었고 매사에 의욕이 넘쳤는데 모든 것이 시들해졌습니다. 멍할 때가 많고 건망증도 심하며 걸핏하면 뼈마디가 쑤십니다.
특히 석달 전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고부터는 하늘 같은 남편도 금쪽같던 자식도 모두 꼴보기 싫어졌습니다.
『쓰레기 버리려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졌어요. 얼른 팔을 짚었는데 오른손목뼈가 부러졌지 뭐예요. 별로 세게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저녁에 돌아온 남편에게 하소연했다가 『내일 입을 와이셔츠도 없는데 칠칠치 못하게 넘어졌느냐』며 핀잔만 받았습니다. 아들 녀석은 한술 더 뜹니다. 『그럼 외식해야겠네. 엄마 돈이나 줘요』
서운한 마음에 울고불고 소리를 질렀더니 두 부자는 잠시 주춤하는 듯하다가 이내 갱년기 발작쯤으로 여기더라는 겁니다.
L부인처럼 제2의 사춘기를 맞는 여성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폐경 연령은 48세. 대개 45∼55세가 되면 갱년기를 맞습니다.
얼굴이 자주 달아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어지럼증 편두통 배뇨곤란 우울증 신경쇠약의 증세가 나타납니다. L부인처럼 뼈가 약해지는 골다공증도 흔히 보는 갱년기 증상입니다.
『빨리 문닫아라. 뼈 속에 바람든다』
『할매 그런 거짓말이 어딨노. 뼈 속에 우째 바람이 들어가노』
어린 시절 할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눈 사람이 많을 겁니다.
골다공증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골밀도는 35세에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그 후 조금씩 떨어집니다. 특히 폐경후에 골밀도가 급속하게 떨어지므로 미리 예방해야 합니다.
L부인에게 걷기 조깅 같은 심폐지구력운동과 아령 체조 같은 근육운동을 권했습니다. 수영도 좋은 운동이지만 물의 부력 때문에 골밀도를 높이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년 여성이 골다공증을 막으려면 먼저 준비운동을 10분 하고 30분 정도 심폐지구력을 기르는 운동을 한 다음 근육운동으로 넘어가 20분 정도 채우고 마지막으로 5분간 정리체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갱년기 여성은 심혈관계 질환을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확률이 4분의 1로 낮지만 갱년기 이후에는 거의 비슷해집니다. 그런데도 많은 여성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박사님 저는 저혈압인데요』
『어디 봅시다. 저혈압이 아니라 혈압이 높은데요』
『어 이상하다. 내 혈압이 왜 높지』
갱년기 여성은 운동중에 자신의 혈압이 어떻게 변하는지 자주 재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갱년기 질환은 운동과 식생활로 조절하고 건강에 조금만 신경쓰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얼굴에 난 잔주름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지만 젊은이도 이해하고 늙은이도 헤아릴 수 있게 된 중년이 인생에서 가장 넉넉한 시기입니다.
황수관<연세대의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