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民意를 아무리 몰라도…』

  • 입력 1997년 5월 30일 19시 59분


「혹시나」했더니, 또 「역시나」였다. 30일 오전 TV앞에서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지켜보면서 「도대체 저런 담화를 왜 발표할까」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담화를 앞둔 청와대의 분위기로 미루어 92년 대선자금 내용을 속시원히 공개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고해(告解)」와 「사죄(謝罪)」의 태도는 보일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 담화의 내용은 「변명(辯明)」과 「협박(脅迫)」으로 일관했다. 과거에 대한 고백이나 책임지는 자세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대선후보조차도 선거자금의 규모를 알 수 없었다』며 자신은 한발 뺀 뒤 모든 책임을 「선거제도」와 「정치관행」 탓으로 돌렸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대선자금의 총규모나 내용을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가려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은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을 향해 억지 동의를 구하려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그 어떤 명목의 돈도, 단 한 푼의 정치자금도 받기를 거부했다』며 「자랑」까지 보태는 대목에서는 「민의를 몰라도 저렇게 모를 수 있을까」하는 탄식(歎息)과 실소(失笑)가 터져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본보가 며칠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3.3%가 「대선자금 공개거부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같은 민의를 김대통령은 「정서(情緖)」로, 민의의 요구에 응하는 것을 「영합」과 「타협」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김대통령은 「중대결심」 운운하며 대국민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면 신한국당내에서조차 『대통령이 아직도 야당총재 시절의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정확히 18년전인 79년 5월30일은 김대통령이 신민당 총재로 선출돼 국민을 향해 갖은 협박을 서슴지 않았던 朴正熙(박정희)독재정권과 마지막 투쟁을 시작하던 날이었다. 그래서 더욱 「정치무상(政治無常)」이 느껴지며 만감이 스쳤다. 박제균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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