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04)

  • 입력 1997년 6월 6일 09시 43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 〈57〉 내가 그 끔찍한 무덤 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생각하자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영광되고 위대하신 신 알라 이외에 주권 없고 권력 없도다! 나는 천벌을 받아도 싼 놈이야! 고향에 가만히 앉아 있었더라면 지금쯤 호의호식하며 살았을 텐데, 공연히 눈이 뒤집혀 객귀를 쫓아 다니다가 끝내는 친지 한 사람 없는 이 낯선 타국에서 생매장을 당하여 죽는구나. 어리석고 못난 몸! 이 고장에서 결혼을 하다니, 어리석기도 하지! 제가 묻힐 무덤을 스스로 판 거지.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어차피 죽을 바에야 제대로 죽어서 이슬람교도답게 목욕도 하고 수의도 입고 싶구나! 이렇게 비참한 죽음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든지 산중에서 굶어죽는 편이 나았어!』 처음 한동안 나는 흡사 미친 사람처럼 이렇게 소리치며 나 자신을 질책했습니다. 그러나 소리친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나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는 그 캄캄한 동굴 속에서 주야의 구별도 못한 채 갇혀 지냈습니다. 처음에 내가 이 무덤 속으로 들어왔을 때 들리던 신음 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 사이에 숨이 끊어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질척거리는 시체 더미 위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자신의 어리석은 소견과 탐욕을 원망하는 것이었고, 어둠 속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귀신의 웃음 소리를 저주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전능하신 신을 축복해보기도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죽은 사람의 해골 위에 몸을 던지고 알라의 구원을 빌기도 하고,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차라리 죽음을 바라기도 하였습니다. 죽음만이 이 모든 고통과 절망에서 나를 해방시켜줄 것 같았던 것입니다. 그 캄캄한 동굴 속 시체 더미 위에 엎드려 절망에 몸을 떨고 있는 동안 배고픔의 불길은 창자를 뒤틀기 시작했고, 갈증의 모래는 목구멍을 틀어막았습니다. 참다못한 나는 어둠 속에 일어나 앉아 보리빵을 더듬어 한 입 베어먹었습니다. 그리고 물도 한 모금 마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로 그처럼 비참한 빵을 먹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잠시 후 나는 일어나 동굴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동굴은 그러고보니 양쪽으로 몇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 중 어떤 것은 끝없이 뻗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옛날에 집어 넣은 시체며 뼈다귀들이 함부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던져진 시체에서 멀리 떨어져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그래도 시체가 썩으면서 흘리는 물로 바닥이 질척거리지 않아서 그나마 앉아 있을 만했던 것입니다. 보리빵과 물로 허기와 갈증을 약간이나마 면한 데다가 마른 자리로 자리를 옮겨 앉게 되자 나는 비로소 죽은 아내를 생각할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푹푹 썩어가고 있는 시체 더미 위로 올라가 아내의 시체를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안아다 내가 자리잡은 곳으로 옮겨놓았습니다. 남편으로서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때 아내의 시체는 이미 심하게 부패하여 흐느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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