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지의 세상읽기]주부 외식

  • 입력 1997년 6월 14일 07시 44분


시장 좌판에 앉아 찹쌀떡을 사먹고 있던 어느 며느리가 먼발치에서 시어머니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급하게 꿀꺽 삼키다 그만 떡이 목구멍에 걸려 죽었단다. 질식사한 며느리. 실화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렸을 때 찰떡 같은 것을 물 마셔가며 천천히 씹어먹으라고 어머니가 해주신 얘기다. 이제 며느리 나이를 지나 시어머니에 근접한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런 질식사 가능성보다는 찰떡 먹다 죽었다는 그 며느리의 심경에 더 신경이 쓰인다. 죄의식…그렇다. 그때 그 며느리가 떡조각을 아들 입이나 남편 입에다 넣고 있는 중이었다면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주부들은 자기 입에다가 맛있는 것을 넣는 것에 대해 경중(輕重)의 차이는 있어도 죄의식을 가진다. 남편이 출장 중인 친구집에 가보면 대개 반찬이 형편없다. 『원, 여편네들이…』 강남이고 어디고 괜찮은 식당에 가보면 점심시간에는 중년부인들이 꽉꽉 찼더라고 꽤나 개탄조로 말하는 남자들 목소리가 들린다. 식당을 보면 매일 여자들이 꽉 차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주부들의 점심회식은 대개 한달에 한번이면 상당히 착실한 모임인 편이다. 또 내용을 듣지 않고 목소리의 톤과 웃음소리로 미루어 「쓸데없는 수다」라고 몰아붙이나 사실은 가족들의 건강 상품구매정보 요리 교육 등에 대한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귀중한 생활정보가 오고 가는 곳이 주부들의 회식모임이다. 평소에는 설거지 차원에서 언제나 식구들이 남긴 음식으로 주로 혼자 점심을 먹는 아내나 시집간 딸이 한달에 한번 정도, 많으면 두번 정도 여학교동창이나 아이들학교에서 만난 또래의 주부들과 조금은 좋은 식당에서 오랜만에 「자기가 만들지 않은」 「제대로 된 음식」의 메뉴를 고르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때로는 남편의 비리가 도마에 오르기도 하지만 같이 맞장구쳐 주기보다는 「네가 너무 지나치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자기 주변의 더 심한 예를 들며 충고하는 친구가 더 많다. 아내가 가끔 낮에 친구들과 좋은 회식을 하고 나면 일요일에 낮잠 자는 남편을 콩콩 치며 외식하러 나가자고 하는 일도 줄테니 남편들도 좋지 않은가. 쓸데없는 낭비라고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다. 최연지〈방송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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