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박옥순/기분좋은 「봉투」

  • 입력 1997년 7월 3일 08시 26분


몹시 더울 때는 아직 아닌데 푹푹 찌는 더위가 10여일째 계속되던 지난 6월20일. 내년에 고희를 맞는 친언니 같은 선배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문단에 등단, 상을 받는 날이다. 너무도 장하고 기뻐 수상식에 따라가 축하해 드리기로 했다. 내마음도 오월의 잉어처럼 부풀어 아침밥도 먹는둥 마는둥하고 나들이 채비를 했다. 며느리가 목욕하러 간 모양이라 신발장 위에 「6시에 장독 닫을 것」이라고 쪽지에 크게 써놓고 시내버스를 타고 원주역으로 갔다. 시인 언니을 두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먼저 나와있던 선배가 나를 반겼다. 청량리행 통일호 열차에 나란히 앉아 새우깡을 먹으며 백일장이라면 미쳐 둘이 뛰어다닌 10여년을 되새기니 감개무량했다. 그러나 선배는 이제부터 짐이 더 무겁다고 했다. 차창 밖에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은 모두 선배를 위한 시로 보였다. 푸른 산과 들 팔당강이 모두 축하하는 듯했다. 오전 11시50분, 청량리에 도착했다. 수상식은 오후 6시였다. 푸짐하게 곰탕으로 점심을 마치고도 시간을 때울 길이 없어 상계동에 있는 선배의 막내 따님댁에 들렀다. 교육자인 선배의 참교육아래 자라서인지 처음 간 집인데도 무척 편하게 대해줬다. 혹 교통이 막힐까 일찌감치 오후4시경 행사장인 광화문 출판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알맞은 시간에 당도했다. 각계 인사들과 심사위원들도 와있었다. 꽃다발 향에 코가 상큼했다. 선배의 아들 딸 사위들 그리고 다른 수상자 가족과 꽃들이 어우러져 행사장은 푸근했다. 심사평 당선소감 시낭송 순으로 식은 소박하게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역에서 밤10시 열차를 기다리던 중 선배의 막내 사위가 헐레벌떡 배웅을 나왔다. 중소기업체에 근무한다고 했다. 미남형에 얼굴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밤 늦게 내리실텐데 택시나 타고 가세요』라며 선배와 나에게 봉투를 하나씩 건네는게 아닌가. 남의 사위, 봉급에 맞춰 사는 사람인데…. 받는 순간 마음이 불편했다. 장모의 친구에게, 그것도 초면인데 내게까지 성의를 보이다니…. 나는 뜻하지 않은 호의에 그날밤 겉잠을 잤다. 선배에게 좀더 잘해 드려야지, 그 젊은이에게 어떻게 이 고마움을 전할까. 명년 선배의 고희때 만나 고마움을 말하리라. 나의 자식들도 그런 너그러움을 갖기를 바라며 짧은 여름밤 잠을 청해본다. 박옥순(강원 원주시 중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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