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한 95년부터 경북 구미시 상모동의 박정희전대통령 생가를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더니 작년에는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최근에는 신한국당의 일부 대통령후보 경쟁자들의 박전대통령 찬양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져 「박정희 신드롬」을 확산시키고 있다.
정치적 신드롬이란 오늘날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침체돼 국민생활이 곤궁해지거나 국가의 위상이 크게 실추되면 옛날이 그리워지고 「그때 그 시절」의 지도자를 영웅시해 추모하게 된다. 오늘의 프랑스만 해도 경제가 어렵고 그 위상이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며 국제어인 프랑스어가 영어에 크게 뒤지는 상황이 되자 「나폴레옹 신드롬」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민도 수출경쟁력이 추락하면서 외채가 크게 늘어나고 기업도산이 속출하며 물가가 불안한 가운데 폭력이 난무하자 60,70년대의 고도성장을 이끈 박전대통령에 대한 신드롬이 대구경북(TK)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확산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경선주자들이 이용하려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를 묵과하거나 지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도자란 대중에 맹목적으로 영합해서는 안되고 시대상황과 시대정신을 바로 인식해 대중이 지향할 목표와 비전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정희시대만 해도 저가 저질의 소수 전략상품을 대량생산해 일부 국가에 집중 수출함으로써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자본(資本)주의의 초기 산업화 사회였다. 몰개성적인 군대식 명령으로 통제하던 경직된 권위주의 통치시대였다. 하지만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의 한국은 고가 양질의 다양한 상품을 소량생산해 수출시장을 전세계로 다변화해야만 지속적인 안정성장이 가능하다. 지식이 핵심적인 생산요소가 되는 지본(知本)주의의 초기 정보화 사회로 개성적 창의 존중의 유연한 민주정치 시대다. 따라서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당시에는 박정희식 리더십이 적실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오늘날에는 전혀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리더십이다.
고도의 첨단기술과 예술적 능력이 결합된 고가 양질의 다양한 상품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한 한국경제가 무한경제전쟁 시대에 고전하고 신음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다.
이런 경제위기를 타개하려면 먼저 지도층이 법적 의무뿐만 아니라 검소 절약 봉사하는 도의적 의무까지 부담해 솔선수범함으로써 국민의 동참을 유도하고 교육 과학 기술 사회간접자본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배재연(대구대 행정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