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충남 아산군 영인면 백석포리 마을 동쪽에는 야트막한 월랑산이 있다. 어린 시절 자주 오르내리며 새를 쫓고 겨울철에는 제법 토끼몰이까지 하던 추억이 어린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아산만의 질펀한 갯벌이 눈에 들어오고 장수바위에 앉아 있노라면 시원한 바람에 땀이 절로 식는다.
이 산의 남쪽 기슭에는 조그만 옹달샘이 하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샘을 「부처샘」이라고 불렀다. 조상 대대로 마을의 영천(靈泉)으로 여기며 아끼는 약수터다. 바위틈에서 새어 나오는 샘물은 날이 가물 때나 비가 올 때나 한결같이 맑고 깨끗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물론 무더운 여름날 논밭에서 일하던 농부들도 이 샘물을 마시며 갈증을 달래고 고된 하루의 피로를 풀곤 했다.
이처럼 옹달샘은 마을 사람들의 고된 심신을 달래주고 사랑을 받아 오던 고향의 정겨운 명소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옹달샘에는 물이 괴지 않고 말라붙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수소문했다. 마을 노인들은 마을에 내린 재앙 탓이라고까지 했다.
지난 해부터 월랑산 아랫녘에서는 중장비가 동원되고 산을 깎아 내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이 곳에 농공단지를 세우기 위해 부지 조성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발파작업 도중 이 옹달샘으로 통하는 수맥을 파괴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어이없는 결과에 아연실색, 시공회사에 거세게 항의했다. 끊어진 수맥의 복원을 탄원했다. 그러나 한번 훼손된 수맥이 원형대로 이어질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개발을 위한 공사에 풍수의 신비도 마을의 위안도 사라졌으니 얼마나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인가.
얼마전 고향에 갔을 때 선대 묘역을 돌볼겸 월랑산에 올랐다. 바짝 말라 거북 등처럼 바닥을 드러낸 옹달샘을 보는 순간 허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고향의 한 구석이 사라지는 듯한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제 영원히 맛볼 수 없는 고향산 옹달샘의 물맛, 쪽박으로 물을 떠 마시면 간담까지 서늘하던 천혜의 물맛을 다시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오며 초등학교 시절 부르던 「옹달샘」이라는 동요를 불러보았다.
전홍섭(서울 중랑구 묵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