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김연민/마음의 여유를 갖자

  • 입력 1997년 7월 26일 08시 14분


법정스님의 맑고 산뜻한 수필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언제나 생활 자체를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그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무소유」는 풍요로워진 물질 문명 때문에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충고하고 있다. 며칠전의 일이다. 고3 수험생인 나는 집안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이유인즉 성적이 별로 오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가능성은 보여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성적이 얼마 오르면 카세트를 사주겠다는 일종의 당근 작전을 펼치셨다. 나는 그 작전에 보기좋게 걸려들어 아버지의 기대만큼 성적이 올랐다. 그 결과 상당히 괜찮은 미니 카세트를 선물로 받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애용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으로 가방을 정리하다 보니 카세트가 없었다. 깜박잊고 학교에 놓고 온 것이다. 학교엔 유난히 좀도둑이 많은데 혹시 그사이에 누가 집어가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으로 머릿속이 꽉 찼다. 나는 다시 학교에 가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때 시간이 새벽 1시였다. 다 낡아서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던 자전거를 꺼내 타고 마치 새끼를 찾아가는 한마리 여우처럼 조용한 밤거리를 달렸다. 가로등 불빛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졌고 교문에 들어설 때는 길가의 커다란 포플러만큼이나 걱정이 쌓였다. 뛰는 가슴을 누르며 조용한 교실안 내 책상 속에 손을 넣으니 카세트가 만져졌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고 그때까지의 걱정은 땀이 되어 흘러내렸다. 집에 돌아오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꼭 필요치도 않은 물건때문에 하지않아도 될 걱정만 하게 된것 아닌가. 나는 카세트를 얻은 대신 여유로움의 일부를 잃은 것이다. 눈부신 발전으로 우리는 오늘날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없어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세상을 품어보자는 말은 아니다. 단지 없어도 될 것들을 얻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는 건 아닐까, 삶에 지장이 없는 것들을 하나 둘씩 마음의 여유와 맞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김연민(충남 홍성군 홍성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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