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이후 반년이 넘게 지지부진하던 한보(韓寶)철강 처리문제가 포항제철과 동국제강의 분할인수 제의로 가닥이 잡혀가는 듯하다. 주식을 인수하는 기존의 부실기업 처리방식과 달리 부채는 놔두고 자산만 인수한다는 새로운 형태의 인수방식이 제시된 것이다. 인수자는 부채를 떠안지 않고 부채탕감이나 도로 항만시설 지원 등에 따른 통상마찰을 피하면서 한보를 처리하려는 고육책(苦肉策)이다.
포철 등의 이같은 제의를 채권금융기관들이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값나가는 공장이나 부동산을 팔고 나면 못받을 대출금은 몽땅 금융기관 몫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실사(實査)결과 한보철강의 자산은 4조9천7백29억원, 부채는 6조6천54억원으로 빚이 1조6천3백25억원이나 더 많다. 더구나 포철과 동국제강은 한보 인수가액을 2조원으로 잡고 있어 자산평가에 진통이 예상된다.
설령 인수가액이 다소 높아진다 해도 50여개의 금융기관들이 이 돈으로 빚잔치를 하고 나면 3조∼4조원의 부실채권은 그대로 남는다.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도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특별융자 같은 지원이 불가피하다. 정경유착에 의한 거액 금융비리와 기업주의 무모한 경영으로 인한 한보사태가 끝내 엄청난 국민부담을 초래하고 말았다.
기업청산이나 다름없는 자산인수방식으로 한보문제를 매듭지을 경우 근로자 고용문제는 물론 휴지조각이 될 주식을 갖고 있는 소액주주의 피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도 문제다. 특히 자산평가와 금융기관간의 부담배분 등 어려운 문제일수록 포철과 동국제강은 물론 금융단이 합리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골치 아픈 한보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해서도 안되지만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