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훈/물 건너간 정치개혁

  • 입력 1997년 7월 29일 20시 25분


신한국당이 28일 국회에 제출한 정치개혁 법안은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는 속담을 생각나게 한다. 온 나라를 벼랑끝으로 내몬 한보사태 당시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구조개혁은 그야말로 정치권의 지상과제였다. 정치권만이 아니었다. 정치권의 개혁없이는 결국 우리나라는 삼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그러나 많은 여당의원들은 한보터널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말을 바꿨다. 정치개혁도 좋지만 「여당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어떻게 선거를 치르느냐는 것이었다. 갈수록 당내 정치개혁 특위에서도 이같은 현실론이 세를 얻어갔다. 결국 신한국당은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TV연설을 몇차례 더 늘리는 등 「고비용 정치구조」에 덧칠을 하는 수준에서 정치개혁안을 만들었다. 당초 검토했던 「떡값수수 정치인 피선거권 제한」 「정당기탁금 개선 배분안」 등 혁신적인 안들은 물론 제외했다. 「기부행위 제한기간」을 1년전부터, 「당원 단합대회 금지기간」을 선거운동 개시 3개월 전부터로 늘리자는 것도 모두 빼버렸다. 그나마 국회에 제출한 이 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회의와 자민련도 정치개혁입법 공동안을 이번 주내로 국회에 제출하고 여야동수의 특위구성을 계속 요구할 생각이지만 신한국당은 「불가(不可)」입장에서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선관위관계자는 『늦어도 9월중에는 정치개혁입법이 국회를 통과해야만 대선준비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며 『우리야 하염없이 정치권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정치권은 지난 94년 통합선거법을 제정한지 3년만에 벌써 7번이나 이 법을 손질했다. 그러나 한 중진의원은 『돈이 들 수밖에 없는 하부구조가 온존하고 있는데 상부구조인 법만 바꿔봐야 뭘 하겠느냐』고 코웃음쳤다. 제살을 깎으려 하지 않는 정치권을 보며 「제2의 한보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기우일까. 최영훈(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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