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63)이 3일 8년만에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란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옹이 타계한지 2개월만인 89년8월 대통령직에 오른 라프산자니는 8년동안 통치하며 서방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란을 비교적 안정된 국가로 변모시켰다. 그는 퇴임후에도 정책자문위원회의 의장으로서 국정에 기여할 계획이다.
라프산자니는 재임중 경제 등 내치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이 국민, 특히 여성에게 가하는 제약을 완화하는 온건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이란여성들은 공개석상에서는 아직도 차도르를 써야 하지만 집안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라프산자니는 취임직후 경제개발계획에 착수, 청량음료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을 생산하는 수천개의 공장을 건설, 이란경제를 부추겼다. 그러나 극심한 환율변동과 20%를 넘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은 그가 도저히 풀 수 없는 숙제였다.
그는 외교분야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가 가장 아쉽게 여기는 일은 걸프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실패한 점. 걸프국가들은 지역내 패권을 추구해 온 이란에 대해 아직까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호메이니가 「악마의 시」의 저자 샐먼 루시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림으로써 대(對)서방관계가 악화된지 반년만에 대통령이 됐던 그는 레바논의 서방인질들을 석방하는데 일조했으나 미국과의 관계를 해빙시키지는 못했다.
〈고진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