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태길/한 유권자의 견지에서

  • 입력 1997년 8월 3일 20시 08분


큰 것과 작은 것 모두를 얻을 수 없는 것이 삶의 현실이요, 큰 것을 살리기 위해 필요할 경우에는 작은 것은 미련없이 버리는 것이 슬기로운 삶의 길이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집단의 삶도 그렇다. 나 개인의 이익이 우리 집단의 이익보다 크게 보이는 것은 소인들의 근시안적 착각이다. 근시안적 착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소인들은 국가 지도자의 자리를 넘볼 자격이 없다. 감히 국가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의 이익이 나 개인의 이익보다 단연 중대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그 앎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이 무리를 지어 아우성을 치며 동분서주한다. 선거라는 것이 본래 경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힘겨루기에 열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선거의 가장 큰 목적은 국가의 안녕과 질서, 그리고 발전에 있다. 어떤 개인의 영화 또는 일당의 이익을 위해 선거제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큰 목적을 제쳐놓고 우선 정권부터 잡고 보자는 소인배들의 욕심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 국익위한 대선의 조건 ▼ 요즈음 우리들 눈앞에는 실로 한심스러운 광경이 잇달아 전개되고 있다. 큰 것을 도외시하고 작은 것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언행이 중앙 정치권의 무대에서 매일같이 연출된다. 시급한 법안의 처리는 뒤로 미루고 여야가 상호비방과 당리당략에만 열중하는 것은 그 어리석은 광경의 한 예라 하겠다. 권력의 장악이라는 개인 또는 일당의 이익에 골몰한 나머지 동(東)에서 한 말과 서(西)에서 한 말이 다르고, 어제의 행동과 오늘의 행동 사이에 일관성이 없는 갈팡질팡도 한심한 광경의 또 하나의 예다. 대통령 선거도 일종의 승부요, 경쟁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는 여느 승부나 경쟁과는 크게 다른 점을 가졌다. 운동경기나 바둑의 경우는 승리가 주목적이나 대통령 선거의 경우는 국가의 이익이 근본목적이고 승부는 부차적 결과다. 운동경기나 바둑의 경우는 선수 또는 기사만이 경기에 임하게 마련이고 싸우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편이 다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의 경우는 전국민이 경기에 참여하게 마련이고, 전국민은 모두가 한편이며 네편과 내편이 따로 있을 수 없다. ▼ 흠집내기 없는 명승부를 ▼ 대통령 선거에도 승부와 경기의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경기의 직접 당사자인 후보나 정당이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것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르다. 더구나 국가 최고의 지도자를 뽑는 거룩한 경쟁이다. 흑색선전이나 상대편 흠집내기 또는 유권자 편가르기 등 비열한 방법이 난무할 계제가 아니다. 어떤 운동경기보다도 정정당당하게 겨루어야 하며 고단자 기사들의 명국(名局)보다도 더욱 멋있는 명승부를 연출해야 한다. 명승부의 첫째 조건은 법을 지키는 일이요, 그 둘째 조건은 치사스러운 전술을 쓰지 않는 일이다. 교묘한 화술과 무책임한 호언장담 또는 지역감정호소 등으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따위는 치사스러운 전술의 대표적인 것이다. 상대편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도 치사한 짓이다. 정치가로서의 경륜을 앞세우고 떳떳하게 대결하되, 실력을 과장하기 위해 거짓말로 허풍을 떠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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