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태수씨의 옥중메모

  • 입력 1997년 8월 4일 20시 34분


한보사태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鄭泰守(정태수)씨가 구치소에서 정계로비를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 옥중메모가 발견돼 파문이 일고 있다. 한마디로 어안이 벙벙하다. 정치고 경제고 나라모습이 뒤죽박죽된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씨가 옥중에서도 정신을 못차리고 정치권에 줄을 대 회사를 살리려 한 게 사실이라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작태다. 정씨가 한보 임원과 측근들에게 건넨 옥중메모에는 신한국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주자들에게 금전지원을 하도록 지시한 듯한 대목이 있다고 한다. 또 민주계 한 중진의원 이름 밑에는 1억원이라고 써놓아 이 돈이 과연 전달됐는지도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한보돈이라면 독약과 다름없이 인식되는 요즘 정치인들이 이런 돈을 덥석 받았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의혹이 증폭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법당국이 옥중메모가 정말 정씨의 자필인지, 또 메모대로 로비가 있었는지 즉각 조사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이번 일을 자칫 잘못 다루면 겨우 가닥을 잡은 한보문제가 또 어떤 방향으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 아직도 한보진상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은 만큼 새롭게 불거진 메모사건을 어영부영 넘기려다가는 걷잡기 힘든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로비대상으로 메모에 이름이 오른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뛴다는 보도다. 그렇다면 그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메모의 진위와 이행여부를 소상히 가려야 한다. 상식과는 동떨어진 악덕기업인의 옥중메모가 정가에 일파만파를 일으키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동안의 정경유착 관행이 이런 결과를 빚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의혹의 덫에서 빠져나가려면 철저한 수사밖에 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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