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황장진/뱃 사람의 「복수」

  • 입력 1997년 8월 18일 07시 29분


동해안 어느 항구의 수산물 취급회사에서 반백이 되도록 근무한 임부장은 회사 사정으로 최근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임부장한테는 일찍이 서울로 올라가 성공했다(?)는 벗들이 많다. 그들이 내려오면 언제나 싱싱한 회 안주에 흠뻑 취하도록 술대접을 하곤 했다. 진한 대접을 받은 친구들은 서울 오면 꼭 들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임부장은 고향에 올 때마다 간청하던 벗들이 생각나 모처럼 서울나들이에 나섰다. 변두리 여관에 숙소를 정한 뒤 이 친구, 저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는 사정얘기를 하면서 저녁식사나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한결같이 『선약이 있다』 『특근을 해야 한다』 『가게를 떠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모두가 피했다. 「내가 왜 바보같이 그들을 환대했을까. 서울 오면 꼭 들르라고 한 말은 겉치레 인사였구나」. 밤새도록 혼자 술을 마시며 야속한 마음을 달랜 임부장은 이튿날 아침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친구 박사장은 얼굴이 푸르락붉으락해지더니 다짜고짜 임부장을 승용차에 태웠다. 그는 곧바로 서울로 차를 몰았다. 무려 7시간을 달려 저녁 무렵 강남에 도착했다. 박사장은 일류호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임부장을 외면한 친구들을 일일이 전화로 불렀다. 모두 네명이었다. 『나 박인데, 저녁식사나 함께 하지. 여기 강남 호텔인데 7시까지 올 수 있지』 평소 돈 잘쓰는 박사장이 부르자 모두가 제시간에 도착했다. 임부장을 보고는 전날 바빠서 못만나 미안하다고 변명을 했다. 일행은 저녁식사를 간단히 마쳤다. 서로 식대를 계산하려는 시늉을 했지만 실제로 돈을 꺼내는 친구는 없었다. 결국 박사장이 치렀다. 박사장은 근사하게 술 한 잔 살테니 가자고 했다. 서울의 친구들은 그럴싸한 룸살롱으로 안내했다. 양주에다 안주를 푸짐하게 시키고 아가씨도 여섯명을 불러앉혔다. 박사장은 아가씨들에게 팁을 두둑하게 줄테니 기분좋게 놀자며 호기를 부렸다. 술잔이 여러순배 돌아가고 판이 무르익어가자 박사장은 화장실에 가는 체하며 임부장에게 눈짓을 했다. 멋모르고 따라오는 임부장을 데리고 박사장은 밖으로 나가더니 택시를 잡았다. 『아저씨, 신나는 노래 좀 틀어주이소. 녀석들, 뱃놈의 짠맛 단단히 보겠지』 박사장은 임부장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황장진(강원 홍천군 홍천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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