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증가율을 5%이내로 초긴축 편성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세수(稅收)부진 때문에 휘발유 경유 등에 부과하는 교육세와 교통세율을 탄력세 최고세율인 30%로 올리려는 것은 안이한 발상이다. 정부의 긴축예산 의지가 대선을 앞두고 여당 압력에 밀려 퇴색하면 그간 온 국민이 고통을 감내하며 다져온 안정기조가 단번에 무너질 우려가 있다. 세수가 모자라면 초긴축 아니라 동결을 해서라도 예산의 균형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품과 비효율을 걷어내고 경제활력을 되찾으려면 재정안정이 최우선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손쉬운 세금인상으로 재정지출을 늘린다면 다음에 누구에게 허리띠 졸라매자고 호소할 것인가. 그러잖아도 상반기 생필품가격 상승률은 5.1%로 연간 억제목표치를 넘어섰고 근로자는 임금을 극도로 자제했어도 실업공포에 떨고 있다. 기업은 도산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구조조정에 피를 말린다. 이런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려면 정부부터 씀씀이를 줄이고 탈루세금을 철저히 거두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국회 동의 없이 정부가 세율을 인상할 수 있는 탄력세율제도 운용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세수부진을 내세워 함부로 세율을 올려선 안된다. 그보다는 징세활동 강화로 구멍뚫린 각종 세원(稅源)을 찾아내 과세형평을 기하고 세수도 늘려야 한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봉급생활자의 지갑은 유리지갑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반해 자유직업자나 자영업자 유흥업소 등은 세금을 제대로 내는지 의문이다.
세금 몇푼 안내고 수백억원대의 주식을 증여받는 재벌총수 아들이 있는가 하면 생후 7개월짜리 젖먹이가 1백억원대의 상장사주식을 가질 수 있는 게 우리 세제(稅制)다. 뿐만 아니라 작년 한 해 국세청이 세금을 부과하고도 못거둔 액수가 무려 6조8천억원이나 된다. 부도 등으로 못거둔 것도 있겠지만 세제의 허점을 보완하고 징세행정을 과학화하는 것이 세금인상보다 더 급하다.
공공부문 예산절감 노력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미국은 전체 연방공무원의 12%인 25만명을 줄여 연1천억달러의 예산을 절감한다는 계획이고 일본은 22개 중앙부처를 12개로 축소하는 정부개혁을 추진중이다. 태국 각료들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월급 30% 삭감을 자진 제의했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인구대비 공무원수가 10년사이 두배로 늘었고 작은정부 의지는 눈씻고도 찾아 보기 어렵다.
경부고속철도 영종도공항 농어촌구조조정 같은 대형 국책사업들은 주먹구구식 계획이나 사업지연 등으로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에 따른 비효율과 예산낭비는 또 얼마나 심한가. 이런 것부터 꼼꼼히 챙겨 나라살림을 알뜰하게 꾸려나간다면 세금이나 올려 재원을 확보하려는 한심한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세금인상으로 서민가계 부담을 늘리며 긴축예산을 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