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91)

  • 입력 1997년 9월 7일 09시 47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17〉 상인들에게로 되돌아온 아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그는 마루프의 진실을 폭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도 없었던 것이, 그토록 마루프를 칭찬하다가 갑자기 그를 헐뜯게 되면 상인들은 아리를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아리 자신이 이 사기 사건의 공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아리씨, 그분에게 이야기해보셨나요?』 상인들은 아리에게 물었다. 『아니오. 나는 마음이 약해서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답니다. 나도 그분께 일천 디나르를 빌려드렸습니다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리가 이렇게 말하자 상인들은 볼이 부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말하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이오? 당신은 그분과 동향인이잖소』 『오, 여러분! 그렇지만 당신네들이 그분께 빌려준 돈 문제를 가지고 나한테 와서 따질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네들이 그분께 돈을 빌려드릴 때 나한테 한마디 상의한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당신네들이 직접 독촉해 보십시오. 만약 그분이 갚지 않는다면 임금님께 고소를 하시든지』 딴은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아리가 빚 보증을 서지 않은 이상 아리에게 따질 일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일동은 왕에게로 몰려갔다. 왕에게로 몰려간 상인들은 「카이로의 상인」 마루프에 대하여 소상히 아뢴 다음 말했다. 『현세의 임금님이시여, 그 너무나도 통이 크고 인심 후한 외국 상인 덕분에 저희들은 골탕을 먹고 있는 실정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가난뱅이들에게 모조리 나누어줘 버리니까요』 듣고 있던 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 외국 상인이라는 자가 가난뱅이들한테 돈을 나눠준다고 해서 그대들이 골탕먹을 건 뭔가?』 『그분이 가난뱅이에게 돈을 나누어주든 말든 그것에 대해서는 물론 저희들이 상관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이 정말 부자라면 벌써 짐이 도착해서 지금 쯤은 저희들로부터 빌려간 돈을 갚음으로써 그분의 성실성과 신용을 증명해 보여 주어야 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태껏 짐이라고는 하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분이야 짐꾼들이 짐을 싣고 뒤따라 오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십 일이 지나도록 짐이 도착하지 않으니 그분에게 돈을 빌려준 저희들로서는 답답할 수밖에요』 듣고 있던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외국 상인이라는 자가 짐도 없으면서 그대들에게 사기를 쳤단 말인가?』 그러자 상인들은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꼭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 만약 피천 한닢 없는 사람이라면 그토록 돈을 아낌없이 흩뿌릴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분이 저희들에게 빌려 가난뱅이들에게 나누어준 돈은 자그마치 육만 디나르나 된답니다. 정말이지 그분처럼 도량이 넓고 인심이 후한 사람을 저희들은 여태껏 본 적이 없습니다』 육만 디나르의 돈을 가난뱅이들한테 뿌렸다는 말에 왕 또한 내심으로는 몹시 놀라워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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