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가 위상이 말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적 안정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물론 아시아국가 평균치에도 못미친다는 것이 미국 와튼계량경제연구소(WEFA)의 조사결과다. 이같은 정치불안속에 경제활동 의욕이 위축되면서 한국기업의 신뢰도는 OECD 24개 회원국과 아시아 12개국 등 36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제성장 물가 금리 환율 금융 외채 행정규제 등도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다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됐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WEFA가 처음 국가별 위험도를 평가했던 95년 10월까지만해도 한국은 거의 모든 항목에서 OECD 평균치를 웃도는 건실한 국가였다. 성장 물가 환율 외채 등 거시경제지표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의욕도 넘쳐나는 나라였다. 정치적 안정 역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던 것이 불과 2년 사이에 모든 것이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평가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항목별 위험도 그 자체가 아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해마다 국가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정치와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정치적 불안정이 국민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쳤고 정치논리에 이끌린 정책의 실패가 경제 각 부문에서 개도국 수준에도 못미치는 평가를 받도록 만들었다.
정치가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기업인의 활동의욕을 꺾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번 대선전에서도 각 정치세력은 국민경제나 21세기 국가전략 등은 뒷전으로 미뤄 둔 채 집권을 위한 이전투구식 정쟁만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따른 정국불안이 기업투자를 얼어붙게 만들고 생산과 수출을 위축시켜 경제의 안정기조를 뒤흔들고 있다.
정책의 실패가 경제를 악화시켰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경제가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내몰린 것은 경제문제를 경제논리로 풀려하지 않고 정치논리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목적의 OECD 가입이 그렇고 그후의 외환 금융 산업 노사 농업정책 모두가 그랬다. 우리 경제의 높은 성장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종합성과 일관성 그리고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경제정책이 우리 기업의 생산성 국제경쟁력 대외신인도 등을 끝없이 추락시켜 왔다.
정치권과 정부의 대오각성 없이는 한국경제의 장래는 앞으로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안정돼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정치인 스스로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치권은 정치적 극한대결을 접어두고 정책대결로 나서야 한다. 정부 또한 기업의욕을 높이고 시장경제 활성화, 제도의 유연성 확보, 인프라 확충, 기술혁신 등 당면 정책과제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