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57〉
남편에게 화를 입힐 궁리를 하던 파티마는 마침내 좀 엉뚱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마법의 반지를 훔치고 남편을 죽인 다음, 그녀 자신이 왕위에 오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그녀는 남편이 잠자고 있는 방을 바라보며 자신의 궁전을 몰래 빠져나갔다.
『내 이놈을 기어이 죽이고 말리라』
파티마는 남편의 방을 향하여 다가가면서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그런데 마루프로 말할 것 같으면, 신앙심이 두터웠으므로 측실을 품에 안고 자는 날에는 손가락의 반지를 뽑아 베개 위에 놓아 두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반지에 새겨져 있는 신성한 이름들을 공경했기 때문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전신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할 때까지는 결코 반지를 손가락에 끼지 않았던 것이다.
파티마는 이런 사정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던 터라, 마루프가 잠이 들기만 하면 얼마든지 반지를 훔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야음을 틈타 왕의 침소로 숨어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 시간에 왕자는 초롱불도 켜지 않고 문을 열어놓은 채 변소에 들어앉아 용변을 보고 있었다. 왕자가 어두운 변소 안 대리석판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까 그 못된 파티마가 별궁을 빠져나와 왕의 침소가 있는 궁전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걸 본 왕자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마귀할멈이 이 밤중에 침소를 빠져나와 아버님의 거처로 가다니, 여기에는 필시 무슨 관계가 있을 거야』
이렇게 중얼거리고 난 왕자는 변소에서 나와 몰래 그녀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왕의 궁전으로 들어간 파티마는 마침내 왕의 침실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때까지 파티마의 뒤를 밟아왔던 왕자는 문 뒤에 몸을 숨긴 채 허리에 차고 있던 단도를 뽑아 들었다.
왕자는 평소에 그 단도를 매우 소중히 여겨 알현실로 들어갈 때도 몸에 차고 들어가곤 했다. 그의 그런 모습이 귀여워 한번은 왕이 이렇게 말했다.
『얘, 아들아, 그건 참 기막힌 칼이로구나! 하지만 사람의 목을 칠 일이 아니라면 왜 그런 걸 가지고 다니나?』
그때 왕자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베어야할 목이 있으면 반드시 베어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아버지는 몹시 흥겹게 웃으신 바 있었다. 왕자는 바로 그 단도를 빼든 채 문뒤에 숨어 왕비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왕의 침실 안으로 들어간 왕비는 부스럭거리며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왕자는 직감적으로 왕비가 반지를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왕비가 반지를 찾아낼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왕비는 낮은 탄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기어이 반지를 찾아낸 것이었다.
반지를 찾아낸 왕비는 발길을 돌려 침실을 나오고 있었다. 왕자는 얼른 문 뒤로 몸을 숨겼다. 반지를 들고 밖으로 나온 왕비는 이모저모 반지를 살펴보다가 마침내 그것을 문지르려 하였다. 바로 그 순간 왕자는 칼을 들어 왕비의 목을 정통으로 내리찍었다.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왕비는 쓰러져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글:하일지>